13. 행복은 조건 없이 느껴야 진정한 행복이다.
어렸을 때는 확실히 지금보단 부족함이 많았다. 시대 자체가 현재와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덜 발달했고 편리함이 적었다. 하지만 그때엔 그때 나름대로 좋은 점이 많았고 참 좋은 세상이다 신기해하면서 어린날을 보냈던 건 확실하다.
신달자 작가의 오래전 인터뷰를 보게 되면서 행복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지금 시대는 자본주의에 입각하고 있고 소통의 부재는 심각해졌고 남의 것을 탐내는 상대적 결핍이 지나쳐 큰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행복요소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시내에 놀러 가는 것, 맛있는 저녁을 먹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사진을 보는 것 등등 사소하고 소소한 행복요소들은 늘 내 곁에 머물고 있었는데 현재는 상황이 달라진 거다. 비슷한 감성은 있을지 몰라도 뭔가 순수함이 결핍되어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브랜드 커피를 마셔야 만족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면 돈을 들여 굿즈를 구매해야 하고 좋은 집과 좋은 차 좋은 직장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게 된 거다. 철저한 이윤을 따지고 드는 거다.
디지털이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날로그가 맞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철저히 후자의 감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어쩔 수 없이 시대 변화에 맞춰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감정의 공허를 느끼고 행복의 수치를 점점 더 어리석게 높이고 있는 걸 발견할 땐 참 안타까워지는 거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도 높아진 생산성에 감탄도 하지만 한 번씩 급격히 꺼져 내리는 박탈감 같은 걸 느끼며 행복하지 않다고 믿게 되는 오류가 생긴다.
따지고 보면 행복은 사소한 것이고 대단한 게 아닌데 언제부터 너무 엄청난 목표처럼 설정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내가 기억하던 행복요소들이 참 쓸모없는 것 취급을 받고 있는 듯 해 기분이 씁쓸하다.
행복 기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 이윤에 근거, 자본주의에 입각, 상대적 박탈감을 앞세운다면 아마도 영원히 , 온전히 행복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거기다 소통의 부재까지 더해진다면 이렇게 삭막한 지금을 어떻게 견딜 것인지 말이다. 행복은 조건 없이 느껴야 진정한 행복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