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정리가 문제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나와 편리함을 지향하는 남자의 의견차로 인해 '또다시' 스파크가 튀었다. 게으른 나의 생각이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에 기인한 것이지만 뭐든 그렇듯이 다 나에게도 그만한 사정이란 게 있었다. 남자는 매번 이해는 한다면서도 관대함의 유효기간은 참 짧다. 널브러질 듯 한 무더위에 더 힘든 건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나에겐 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려 하는 나이지만 어젠 나도 한순간 이성의 끈이 풀어진 거다. 조율이 필요한 부분은 너무나 많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라 서로 한 발짝 물러나 사과로 마무르는 되었지만 옆에서 , 으르렁 아닌 드르렁 소리를 내며 잠이 든 남자의 머리를 세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밤이다.
그렇게, 안정과 힐링을 위해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던 중에 후원이 필요한 아기에 관한 광고가 내 마음에 2차 지진을 불러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를 부르는 아기와 이런 아기를 힘겹게 양육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첫 장면부터 나를 울렸다. 확실히 나조차 유별나다 싶을 만큼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밤이었다. 아는 남자와 다툰 후, 세상 예쁘게 잘 자고 있던 내 아기의 중간에서 마음이 참 복잡해졌다. TV 속 아기는 내가 낳은 아기가 아닌데 왜 나는 죄책감이 드는 것이며 잘 자고 있는 진짜 내 아기에겐 더 애틋한 마음이 됐던 것인지. 열대야에 지친 몸처럼 널브러진 마음이 약해진 탓이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를 생각하게 됐던 마음속 맥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좋은 마음임에는 확실하지만 이것이 어디에 기인한 행동력인지 의문이 생겼다. 이럴 때면 심리학 전공자들이 약간 부러워진다.
그 아기에게 꽃 닮은 환경을 선물해 주고 싶어진 밤, 나는 그날 밤 도대체 무슨 일을 경험했던 걸까. 아무런 죄가 없는 아기가 마냥 건강히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다 싶었던 밤. 세상 부족한 엄마가 세상 다 퍼줄 수도 있을 것 같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