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결혼의 발견 1

by 새벽뜰
이 세상의 여자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록달록 화사한 색깔과 과감한 디자인의 구두를 선뜻 고르는 여자, 그리고, 그 색색의 구두에 동경의 시선을 던지면서도 결국엔 언제나 무채색의 평범한 구두를 선택하는 여자.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내 검은 소가죽 구두를 내려다본다.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면 무난하다고 평가할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진부하다고 말할 만한 구두였다.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형형색색의 구두들 가운데 이걸 집어 든 이유는 아마도 심리적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무난하고 진부한 형식 속에 맨발을 깊숙이 밀어 넣으면 ‘진짜 나’를 꽁꽁 은닉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과연 이 구두는 어떤 옷에 매치시켜도 그럭저럭 80점은 되어주었다. 100점이 아니면 0점인 극적인 인생을 두려워하는 나는, 평균점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건가? 이를 악물며 사표를 던진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고만고만한 회사의 고만고만한 사무원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습고 또 안쓰러웠다.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中>


계절이 바뀌면 구두를 샀다. 월급날엔 구두를 고르느라 신이 났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내가 운동화 신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고 했고 멀리서 구두 소리가 나면 거의 내가 걸어오는 소리였다고 했다. 나는 하이힐 마니아였고 매장에 진열된 구두를 보면 첫사랑을 마주한 소녀처럼 설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적응의 동물인 걸까. 결혼을 하면서 누구도 부추긴 사람이 없었는데도 즐겨 신던 하이힐을 전부 두고 왔다. 더 이상은 하이힐을 즐기지 않을 것 같았다. 임신을 하면서부터는 높은 구두를 더욱더 멀리했고 그 후로 구두를 사면 대부분 플랫이거나 단화였다.

높은 구두를 신어야 멋이 나고 완벽한 화장을 해야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 가보지 않아 알 수 없었던 결혼 전에 대한 불안 때문도 있었던 것 같다. 안정감이 없어서 더 부추기듯 꾸몄던 거라고 말이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 민낯이 익숙해졌고 외출 시엔 최소한의 화장을 한다. 머리카락은 하나로 질끈 묶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다. 내 발에 딱 맞는 단화는 아기를 안아도 , 뛰어도 전혀 불안하거나 위험하지 않은 것이다. 타인에게 비칠 내 모습을 거울 마주하듯 피곤하게 감시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신발장에 가지런하던 수많은 하이힐처럼 뾰족한 부분이 많았던 나의 신경 줄이 아기와 남편으로 인해 부쩍 느슨해져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음을 깨달았다. 참 부질없이, 쓸데없이 , 피곤함을 자처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가끔은 너무 무방비하고 무책임하게 스스로 방치한 것 같아 "나 완전 촌 X 같지 않아?" 하고 남편에게 물으면 남편은 그런 나를 빤히 보면서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넌 결혼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뻐" 말한다. 립서비스에 능하지 않아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것이 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1%의 배려란 건 잘 알았다.




나 역시 옷장 문을 열면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무채색의 의류가 많아졌다. 매칭이 어렵지 않은 방법을 터득해 가면서 서툴던 변화를 서서히 몸에 익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 주니 왜 진작 이러지 못했었나 왜 그리 옭아매어 살았다 싶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숨통은 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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