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실은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이 한결같이 그분, 또는 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그분이란 말은 어디에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참 괜찮은 호칭이 되었고 선생님이란 말도 누군가를 높일 때 하는 말로 나는 타인에겐 늘 선생님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었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한 애칭이 있었다거나 호명하는 독특한 언어가 있었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짝사랑했든 어쨌든 우선 혼자만 하는 사랑이란 생각이 나를 가장 덜 상처받도록 하는 방법이 되었던 시간들을 지내면서 나는 늘 그렇게 타인이란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를 대해 왔었다.
그랬던 내가, 내 짝사랑 이야기를 유일하게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며 "그 사람"이라는 호칭을 불쑥 꺼내게 되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선택된 호칭이라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해주던 나의 지인은 그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고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고 있었을 뿐.그 사람이라는 말을 내뱉은 순간 나는 그를 향했던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깊은 설렘으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그를 그 사람이라 부름으로써 그는 나에게 가슴 아픈 짝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아주 절친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설령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고백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며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역 고백을 받을 것처럼 마음의 거리가 급격히 좁혀졌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수없이 되뇌어 보았던 그의 이름과 그가 부를 나의 이름을 곱씹어 보면서 마냥 아이처럼 기뻐할 수만은 없었지만 입가가 올라가는 소소한 행복감 정도는 얼마든지 가져볼 수 있었다. 호칭의 힘은 관계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친해지면 말 놓을게 라거나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라고 묻는다거나 이름 불러도 되지?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어떤 사이든 급격히 완만해지는 건 사실이다. 어쩌면 나는 그 급격해짐이 버거워질까 봐 그게 뭐라고 요란이야? 할 정도로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를 살핀 건지도 모른다. 우연히 뱉은 그 사람이라는 말 한마디에 너무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 기분이었다. 그 이후 내가 또 한 번 놀란 건, 상처가 될까 두려워 늘 조심스러웠던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막 불러도 편안한 감정이 유지가 되더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이라 말한다고 하여 내 사랑이 더 슬퍼지지도 않고 서글프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 시간 사이 내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진 건지 아니면 내 사랑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좀 더 어른스러워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그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에 희한한 기쁨이 몰려왔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됨으로써 나에게 비로소 꽃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