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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의뜰 May 05. 2023

당신이 바람에 스치우는 밤

 아무런 욕심이 발생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그래서 정말 그냥 그 자리에 별처럼 달처럼 머물러만 주면 만족할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 말이다. 이 역시도 나이를 좀 먹고 어느 정도 세상물도 좀 먹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온 경험치에서 살펴보자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더 타락을 하여서 탐욕적이고 욕망에 차오른 사랑을 믿는 게 맞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치열하게 살다가 한 발자국 물러나 쉬는 시간이란 걸 가져보게 될 때, 대게 그런 시간을 가져보게 될 때는 많이 지쳐서  해진 옷처럼 너덜너덜한 마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편안함을 자꾸만 찾아지게 된다. 좀 쉬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하며 마음이 비워지게 되면 반대로 마음에 조용히 살고 있던 달은 꽉 차오르는 만월이 되어서 선물 하나를 보내주곤 했던 거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솔직히 별로 없었다. 남들과 똑같이 타인이 하는 만큼만 하고 비슷한 인사를 하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던 제한적인 만남에서 그 사람은 한결같이 다정했고 친절했으며 늘 말을 더 보태어서 나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애썼다. 사실 처음엔 그랬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매너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와 나는 철저히 공적인 관계의 사이였고 그날도 마찬가지로 공적인 업무를 보고 돌아 나오던 시간이었다. 저 사람은 네가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해도 한 번도 귀찮아하지도 않고 설명을 참 잘해주더라? 나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대충 말해주고 말겠만.  이 말을 했던 사람이 그런 것을 간파하는 것에 아주 무심한 스타일의 사람이었기에  더욱 귓가에 맴돌았다.  가슴이 뛰는 걸 느꼈어도 김칫국 마시다 목에 걸리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고 있는 나였어서 으레 그랬듯이 그렇구나 하며 덤덤하게 넘겼다. 기대가 확신이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그럴만한 상황을 겪어봐야 한다. 타인에게 말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우연히 마주하게 된 날. 입으로는 말을 하고 있지만 눈은 무표정했고 목소리의 높낮이가 한결같이 낮았던 그 사람. 업무는 업무일 뿐 감정이 배제된 듯한 모습을 보게 되었던 날. 그런 사람을 보면서 짝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을수도 있는건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그날 이후 무의식적으로 그가 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보게 됐다.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사람의 확신이 된 말과 내가 보고 느꼈던 상황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다. 잘 웃고, 다정하고, 친절했고, 내가 한마디를 물으면 두세 마디를 이어 붙여 답을 해주던 그 사람을 보면서 어쩌면 짝사랑이 완벽한 짝사랑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았던 거다.


 질문을 많이 하는 건 내가 그를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 표현이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알고 있던 것들이 내겐 많았지만 그건 그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비밀 같은 나의 꼼수였다고 하면 말이 될까. 하찮은 꼼수였지만 말이다. 이별은 길고 만남은 짧으니 제한적인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사랑의 대한 예의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게 아쉬워지긴 했지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게 쉬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를 위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선한 웃음과 고맙다는 인사가 전부였지만 너무 바쁜 일상을 사는 그와 나 같은 사람에겐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서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며 행하는 소소한 배려가 , 그럴 수만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윤동주 님은 내 사랑 타령이나 하라고 이런 멋진 시를 만들어 주신건 아니겠지만 이 시를 생각하면 그가 떠올랐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듯, 매일 밤 나는 그의 평안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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