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성장하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의식주는 당연하고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과 등등 도화지에 적어도 다 못 적을 만큼 굉장한 조건들이 있다. 어렵게 어른이 되었는데 더 이상 자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마음이란 게 자꾸만 더 자라고 싶다고 아우성쳤다. 몸은 이미 모두 자라서 아마도 퇴화라는 걸 하고 있을 것 같은 시점인데 마음이란 건 한결같이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머물러 주었는지 어떤 날은 꽃을 피우고 싶다 하였고 어떤 날은 나무가 되고 싶다 하였다.
사랑은 만만하지 않고 감정에 대한 책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무게감이 있다. 아이처럼 받기만 해서도 안되고 희생이란 걸 감수하면서까지 해내는 것이 어른이 할 수 있는 어엿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자라는 동안 해야 하는 일도 참 많다. 내게 주어진 일상을 실수 없이 잘 살아내야 하고 혹여 마음 아픈 일이 있다 하여도 티를 내선 안된다.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잘 꺼내 보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살다가 보니 일상이 갈수록 험난해지고 팍팍한 밤고구마를 물도 없이 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일상을 온전히 볼 수는 없어도 부분적인 감각과 느낌 정도는 파악이 가능해지는 날이 종종 있었다. 매일 반복되고 있는 일이니 어려울 것이 없고, 쉽고, 안정적이고, 살만한 일상이지 않냐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게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일상은 언제나 가장 쉬워 보이고 할 만해 보인다는 사실.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 그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고 상상하면 차라리 내가 사는 내 일상이 훨씬 더 편하다 생각을 그제서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웃는 모습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미소를 짓는 모습과 목소리로 들어보는 웃음은 완전히 다른 색깔의 것이므로. 내가 알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그대로 바깥으로 울려서 퍼지는 웃음은 참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막연히 좋다, 따뜻하다는 느낌의 식상한 감정이 아니라 그 순간에서 만큼은 양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만끽하는 그런 사람 같았달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이 그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서 또 오래 기억할 공간에 넣어둔 건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마음이 있나요 없나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는 물음을 잠시 저 뒤에 미뤄두고 다만 그에게 내가 안락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 지구를 안고 한 발짝씩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나보다 그를 위한 사랑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마음이 깊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지구가 풍선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랐다.부디 나를 향한 무게는 내려놓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