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육아 중

괜찮아

by 조이스랑


인상파에서 미소파, 가능할까?


사춘기 딸과 아들, 어떻게 추억을 만들지?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랑 듬뿍 담아 매일 웃음꽃이 피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늦지 않았는걸. 굳어진 내 얼굴 근육을 이제라도 훈련시키면 좀 나을까. 죽어버린 엉덩이 근육도 다시 살릴 수 있다는데 내 얼굴 근육도 가능하지 않을까? 자료 좀 찾아봐야겠다. 인상파에서 미소파로 얼굴 근육을 바꾸는 법 말이다.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얼굴 표정도 바뀔 수 있을까.

아이가 방문을 걸어 잠그기 전에 진작 이야기를 많이 했으면... 그런 후회를 거듭하고 싶지는 않다.


그나마 아이와 가장 많이 대화하는 때는 야식을 먹을 때다. 아이스크림, 과자, 초콜릿 같은 달달한 간식을 먹으며 우리들도 잠시 달달한 대화를 나눈다. 내가 싫어하는 이 정크푸드를 아이들과 남편은 좋아한다. 이걸 먹을 때만큼은 화기애애하다. 물론 간식 양도 충분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서로 더 먹고 싶은 욕구로 기싸움이 시작되고, 분위기는 금세 싸해진다.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어렸을 적 나는 화기애애한 집에서 자라지 못했다. '우리 집은 왜 그럴까. 왜 다른 집처럼 웃으며 살지 못할까.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 그런 고민이 많았다.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가 하루 한 시도 멈추지 않았다. 평범한 대화가 없고 늘 으르렁 거리는, 대체 종잡을 수 없는 시끄러운 시장통에서 나는 고함소리가 끊임없었다. 대화라기보다는 대부분 비난과 지적질, 원망, 분노로 가득 찬 일방통행의 듣고 싶지 않은 말 뿐이다.


적어도 내가 꾸린 가정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노라 했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거의 불가항력적인 사건이었다. 하나님께 아무리 따져 물어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하필 그 많은 장애 중에서도 의사소통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까. 장애라고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장애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건 나뿐이 아니다. 의사소통 장애를 가진 아이의 말에 우리 가족은 쉽게 피투성이가 된다. 이성을 잃고 나면 엄마인 나도 아이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평상시에는 잘 지내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교정하려는 훈계를 둘 때면 남편도 상처 받는다.


자기가 원하는 거, 딱 그것만 있으면 만족한다. 더 욕심부리지 않는다. 원하는 게 변덕쟁이처럼 순식간에 막 바뀌지도 않는다. 이게 자폐 성향의 특징이다. 어떤 때는 더 원하는 게 없으니 이런 특징이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에 따른 융통성은 전혀 없다. 원하는 게 안 되면 순식간에 화를 낸다. 그만큼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원하는 걸 못해준다고 하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하면 안 되는 말, 하면 안 되는 행동을 막 해댄다. 끔찍한 불통이다. 그런 순간이 일상 속에서 너무 많아 식구에게는 한숨이며 고통이다. 아이와 뭔가를 협상할 수 없다는 것, ‘원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지시키려고 똑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그리고 번번이 좌절을 맛본다. 소통이 안 되니까 좋은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번번이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이성을 잃는다. 원하지 않는 불통으로 서로 상처만 내는 이런 가족을 어쩌다 만났는가 회의에 빠진다. 외면하고 싶다. 어정쩡한 현실,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상황을 회피하고만 싶다. 가능하면 빨리. 그러니 대화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그냥 얼버무리고 짜증 내다 어이없이 화를 내고 우리의 대화는 끝난다. 이런 상황에 워낙 익숙하다 보니 나도 포기하게 된다. 아이와 뭔가를 협상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어차피 되지도 않는 거 그냥 들어주고 말자, 그러면서. 남편도 포기한 걸까? 요즘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안 될 것 같은데?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싫다잖아. 안 가고 싶다는데 그냥 원래대로 해.”

“안 먹고 싶다잖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다 보니 새로운 것을 먹어보려는 시도도 새로운 곳을 가보려는 시도도 자꾸 포기하게 된다.


아웅다웅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으며 매일 상처 받은 건 딸과 아들이다. 딸에게 동생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면 더 이해할까 싶어 지능을 수치화해서 알려준 것뿐인데 딸은 그걸로 동생에게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해댔다. 너는 아이큐가 표준도 되지 않는 바보라며 동생을 할퀴었다. 그 말을 듣고 둘째 아이는 누나 방에 들어가 끈적끈적한 음료수를 방바닥에 침대 요에 뿌렸나 보다. 그래도 성질이 풀리지 않아 누나의 아이팟을 몰래 숨겼다. 아이가 생각해 낸 최고의 복수라고 했다.


자기 방에 들어가 뒤늦게 벌어진 사태를 깨닫고 딸은 길길이 날뛰는 야생마가 되었다. 아니, 내 눈에는 그냥 막돼먹은 폭군이다. 한 달 넘게 청소하지 않아 처음부터 끈적끈적했던 방인데, 딱 걸렸다. 이 참에 동생을 시켜 먹기 딱 좋다. 걸레는 더럽다고 물티슈로 닦으란다. 누나의 거친 말이 무서웠나. 아니면 분노 때문에 잠시 사라졌던 두려움이 다시 돌아왔나. 허구한 날 눈에 보이던 물티슈가 이런 때는 보이지 않는다. 불 꺼진 방에서 둘째 아이가 두루마리 휴지 두 통을 써서 어떻게 방바닥을 닦았는지 모르겠다. 지들끼리의 문제이니 나는 빠져야 하나, 회초리로 때려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새벽이다. 다들 잠든 시간에 고함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동네방네를 휘젓는다. 상관없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집을 나가고 싶다.

어렸을 적 화목하지 않았던 집, 망각했던 기억이 되돌아온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으면 됐을 텐데, 아이가 정상이었다면 됐을 텐데... 자폐니 아스퍼거니 다 집어치우고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잊혀질만 하면 또 반복된다. 내 모든 아픔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어느 별엔가 떨어져 파편이 되고 싶은 날이 다시는 안 올 것 같은데 또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할 것은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다. 환기를 위해 창을 열듯 내 생각의 창을 바꾸기 위한 작업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를 쐬며 자전거를 타든지 산책을 하든지 달리기를 하든지 생각을 가다듬고 이성이 다시 돌아오도록 생각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나를 발칵 뒤집어 놓는 상황에서도 정신 줄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나를 깨운다.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다시 가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 톤을 낮추고 상처 받지 않을 언어를 가려내고 아까는 잠깐 정신이 나가서 그랬지만 지금은 정신을 차렸다고 말해도 괜찮다. 진심을 가지고 다시 모든 일을 시도할 수 있다. 서로를 보듬어주는 사랑이면 충분하다. 막 나갔더라도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우리를 볼 수 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다시 한 걸음 나가는 용기를 얻기 위해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keyword
이전 06화한 번 웃고 스트레스를 날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