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엄마의 말에 '뭔 개소리야?' 하는 말대답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의 모든 말이 개소리라니 제목은 '엄마의 개소리'이지만 아이에게 하고픈 모든 말을 담았다. 그렇게 글을 쓰고 나니, 내 감정이 보였다. 나를 이해해달라는 의미의 글이었는데, 이해받지 못해 화가 나 있던 나는 어느새 진정되어 있었다. 영어로 하면 calm down이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던 마음, 보이지 않던 내 자아가 보이고, 제삼자가 되어 이제 멀리 떨어져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하게 되었다. 이해하게 되었다. 저 멀리 있는 나였지만 드디어 내 편이 된 것이다.
부족해도 괜찮아. 내가 따스하게 안아 줄게.
그런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아무리 감사하려고 감사 일기장을 마련해도 안 되던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삶에 대한 감사가 시작되었다. 교회에서 그렇게 기도 해도 안 되었던 마음인데,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감사했어요." 그런 고백이 흘러나왔다.
남편이 나를 참아주는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가 얼마나 짜증 났을까. 한마디 지지 않고 잔소리하는 딸이 얼마나 불통이었을까. 인상 잔뜩 구푸리고 있는 며느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편과 아이들을,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를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 돼. 별 것도 아닌 일을 단속하던 마음이 느슨해졌다.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나 봐. 어떻게 이런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거지? 의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쓰기가 가져온 힐링이었다. 내 반경 1미터 안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감정이 정리되자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일상을 채우는 행복을 자각하는 걸음의 시작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처음엔 읽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다. 마음껏 책을 빌려 읽으면서 도서관을 드나드니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따라왔다. 난, 작가가 될 거야. 그런 마음이었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더니 강사가 브런치를 소개했다. 곧장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닉네임을 지을 때, '조이스(비문 Joy + s)'와 '조이스(존경하는 사람 이름 Joyce)'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냥 나는 내 삶에 기쁨을 찾고 싶었다. 기왕이면 가득 채우고 싶었다. 끄적이던 글이었지만 좀 더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일, 그건 명랑한 일상을 찾기 위한 연습을 한 번 해보자는 도전이었다. 평범한 하루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내 반응과 감정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글을 써나가고 내 서랍에 글이 쌓일수록 마음을 깨우는 소소한 순간들도 차곡차곡 늘어갔다. 행복한 마음의 기록이 늘어가자 작가가 되지 못해도 글은 계속 써야겠다는 소박한 마음이 찾아왔다. 글쓰기가 정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글이 내 친구가 되었다. 글이랑 수다를 떠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면 유심히 듣게 되고, 누군가 강의를 하면 메모를 한다. 기왕이면 더 잘 들으려는 마음이 생겼다.
길을 걸으며 자연이 오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가로수를 한 번 쳐다보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저녁 산책을 하고 듀플렉스 작은 마당으로 들어오기 전에 달빛과 별빛을 찾아보며 오늘은 이 모습이구나, 한 번 웃어줄 수 있다.
갑자기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비 때문에 산책길을 포기해야 할 때도 오늘은 여기까지, 빗방울에게 인사를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높다란 건물이 없어 내 눈앞으로 하늘이 펼쳐지는 우리 마을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하며 모퉁이를 돈다. 무심코 땅만 쳐다보며 걷는지 저 멀리 앞을 보는지 자주 가는 내 시선도 챙겨보며 단순한 차이를 발견한다. 땅에 돈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뭔 땅만 그렇게 쳐다보는지, 기왕이면 어깨를 펴고 저 멀리 보는 게 낫다 싶어 시선을 바꾸면 저 앞에 걸어가는 사람도 산책하는 강아지도 보인다. 이게 동네 풍경이구나.
초록한 눈망울로 올라오던 새싹들이 계절이 바뀌어 단풍이 드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한 잎 두 잎 자기만의 색깔로 물들어 갈 때 내 마음이 감사로 채워지는 하루, 평안하다. 감사하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내 발걸음이 힘차다.
꿈에 그리던 마음이 있었다. 열정에 불타올라 뭐든 덤벼볼 수 있는 20대의 에너지가 그리웠다. 50대가 코 앞인 나는 다른 에너지로 가득 차있다. 부족한 나를 포용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힘이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가져온 힘이다. 나는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에너지가 아니라, 앞뒤 좌우를 보면서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