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생의 태도

by 조이스랑

다시, 인생의 태도


마음이 무거워서 표정이 어두웠는지, 표정이 어두워 마음이 따라갔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만 조금 고생하지 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잖아.' 밀려오는 일감 속에서 이번에도 해냈다고, 그러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깐 또다시 일에 파묻히기를 반복하며 살았다. 마을활동에 참가하게 되어서 우울증을 앓다 회복되었다는 이를 만나면 그간의 피곤함이 싹 날아갔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음에 가치 있는 활동이었으니 뿌듯하다. 의미와 보람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하지는 않았다. 정작 나는 끝까지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렸다. 가슴 설레는 행복보다는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재촉 속에서 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쉼은 없었다. 나를 다독여야 했는데, 그럴 짬을 갖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힘들어하는 나를 잘 봐줄 마음의 여유도 에너지도 없었다.


감정과는 무관하게 맡겨진 일에는 책임 완수. 과거에 나는 맡겨진 걸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든 최선을 다해서. 가능하면 최고의 결과가 나오도록. 시험일자가 다가오면 지나칠 만큼 가슴이 벌렁거렸다.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는지 늘 운동 후 최고 심박수에 다다른 것 마냥 정신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 누가 닦달하지 않아도 나 혼자 닦달했다. 하나의 습관이었다. 인생 중대사도 아닌 사소한 약속 마감 날이더라도 날짜가 다가오면 최고의 심박수로 늘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그랬다. 내가 잘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즐기기는커녕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혼자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잘하지 못하면 혼자 죄책감을 느꼈다. 남들은 다 자유롭게 빠지고 무단 노쇼인데 나는 애써 그 자리를 지키며 신뢰로 답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단 노쇼까지는 아니지만 '실례합니다. 사정이 있어서요.'라고 자유롭게 말하게 되었다. '나라도 자리를 채워 줘야 해'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죄책감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이래도 저래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나를 생각해주는 쪽을 먼저 선택하게 되었다.


느긋한 마음을 갖게 되다니.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을 품다니. 이건 나이 듦에서 오는 건가. 생애주기에 따라 중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의 패턴이 바뀌는 생리적 현상인가. 아니면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서인가. 어차피 안 될 거 뭐 그렇게 자신을 들볶을 필요 있나 싶다. 첨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애걸복걸하지 않아도 잘할 테다. 연습과 훈련이 더 필요한 일이라면 더 시간이 필요한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 연습이 필요한 일을 하루아침에 해결하려 하지 말자고, 이번이 기회의 끝이 아니라며 나를 다독이게 된다. 좀 더 규칙적인 습관으로 시간을 두고 다듬고자 하면 된다는 마음이다. 이제 더 이상 지나치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죽기 전에 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말 한 마디를 하라면

“그 누구보다 너를 믿어주고 사랑하렴."이다. 바로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고 당부하고 싶다.

사실 난 그렇게 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더라도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기로,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싶다. "잘 했어. 할 수 있어. 누군가 할 수 있다면 너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더 잘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에게 물었다.

“지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를 생각했을 때, 뭘 후회할 것 같아? 네가 만약 곧 죽는다면 말야.”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되었으니까.

“나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걸 후회할 것 같아.”

난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믿어주지 못했다는 게 가슴 아팠다. 자신을 믿어준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라도 나를 믿어주는 용기를 갖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고 내게 기회를 주고 싶다. 내 최고의 모습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진짜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시간이 걸려도 진짜 마음을 살펴야 한다. 내 마음은 나만 열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한 마리 [영혼의 새]이다. 우리 몸 속 깊은 곳엔 영혼이 깃들어 있다.

영혼의 새는 아주 특별한 열쇠로 잠가둔 감정의 서랍을 가지고 있다. 행복 서랍, 슬픔 서랍, 질투 서랍, 만족 서랍, 희망 서랍, 절망 서랍, 침착 서랍, 불안 서랍, 미워할 때 열리는 서랍, 사랑할 때 열리는 서랍, 게으름 피울 때 열리는 서랍, 일을 그르칠 때 열리는 서랍, 그리고 꼭꼭 숨겨두고 싶은 비밀이 들어 있는 아주 특별한 서랍... 자기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만 영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내 영혼을 위해 만들고 싶은 서랍이 있다. ‘한계를 두지 않는 서랍’을 만들고 싶다.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마음만 먹으면 날마다 누릴 수 있다.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다에 갔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라고 예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바다에 갔다. 바다 앞에 서니 돌풍 불던 내 마음이 잔잔해졌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보았을 때 내 마음도 같이 떠올랐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보았을 때 시인이 되는 것 같았다.


여행에서 집에 돌아와 아침에 창문을 열었더니 정동진과 통영 앞바다에서 감탄하며 보았던 일출과 일몰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똑같은 태양이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우리 집에서도 볼 수 있는 태양이었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창을 열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따스한 햇살에 내 몸을 맡겼다. 내가 회복 되었다는 걸 알았다. 마당 앞에 자란 잡초를 보며, 말을 걸었다. "잡초야. 이제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네 모습도 참 예쁘구나. 볼품없어 보이는 너에게도 나비가 날아드는 보니 분명 향기가 있는 거야." 단장되지 않았어도 내 마당은 내 마당이다. 옆집 마당이 부럽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게도 향기가 있었다. 잃어버린 향기를 찾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도서관에 가는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이 반갑다며 춤을 추듯 가지를 흔들었다. 어릴 적 보았던 신작로의 미루나무들처럼 포근했다. 등 뒤에서 따갑도록 장난치는 너 태양아, 너로 인해 오늘도 깊은 잠을 맞이할 수 있으리. 고마워. 이 모든 것이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다.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의 페달을 다시 밟으며 너와 벗하리.

생각의 소리를 듣는다.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

내 인생의 책에 제목을 단다면 뭐라고 할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다시 살기로 했다.’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은 후 사회적 인간으로서 나라는 존재는 이미 오래 전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생각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옥죄었던 영혼이 속박에서 벗어난 것 같다. 내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가려는 영혼이 느껴졌다.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 맞는 말이야. 누구누구 때문에 못 했다거나 어떤 환경 때문에 할 수 없었다거나 그런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니까. 이제 실체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뭐든 도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먹었더니 비로소 내 멋진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평생학습과 자원봉사를 실천했던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위원이었던 남편을 만났다. 사랑했고 존경했다. 결혼 후 늘 평생학습 마을공동체 활동을 실천하는 현장 속에 있었다. 지치고 힘들어 푸념도 많이 했다. 하지만 오십이 다 되어 비로소 내 시간을 갖고 돌아보니 잘 왔구나, 참 감사하구나, 이제 말할 수 있다. 성숙한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 나도 깨닫는다. 이젠 매일의 일상에서 웃으며 삶을 계속하고 싶다. 남편의 손을 잡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배움은 평생 가는 과정이다. 성숙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고통스럽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 고통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만들 수 있다. 절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정상도 없다. 끊임없는 반복이고 노력이고 실패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계속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안다면.


왜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항상 활력을 잃지 않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어느 순간 시들까. 왜 어떤 사람은 어느 순간 배우고 성장하기를 멈추는 걸까. 연민을 갖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삶이 해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힘든 문제를 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존감과 자신감에 강한 상처를 받는 무슨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인이 되면서 생겨가는 어떤 분노와 비판의 마음이 그들을 잡아 내렸을 수도 있다.’


내가 항상 가졌던 질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날카로운 시선을 가졌을까. 존 가드너의 말처럼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글을 쓰면서 이제 나를 더 많이 이해한다. 나와 함께 가는 남편과 아이들을 더 사랑하고 싶다. 지나온 시간 속에 아쉬움이 많아 지금부터 더 많이 행복하고 싶다. 더 많이 웃고 싶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시어머니... 내 삶의 반경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오늘도 명랑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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