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어버려도 괜찮아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순간, 그것은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할 때였다. 20대에는 책 한 권을 읽으면 머릿속에서 글이 따라다녔다. 책 내용이 어쩌면 그렇게 줄줄 생각이 나는지 친구랑 이야기하다가도 읽은 책이 떠올라 대화 주제를 책으로 옮겨가기 일쑤였다. 그런 기억력이 평생 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신통방통한 기억력에 혼자 우쭐대기도 했다.
30대 출산 직후가 되자 다음 페이지만 넘겨도 이전에 읽었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출산 두 번만 하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30대 맘이 토닥인다. 마취를 하면 기억력이 훨씬 감퇴한다는 주장은 오해라지만, 오해 많은 주장이 심리적인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두 번의 전신 마취를 했고, 두 번의 출산 탓인지 모르지만 용했던 기억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30대를 넘어 50대를 바라보는 지금, 어떤 이는 뇌를 잘 훈련하면 갱년기 증후군 같은 것도 없고 노인이 되어도 기억이 감퇴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의 갱년기 기억력은 흡사 출산 직후와 같다. 집중하면서 읽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강의실 문을 열고 나가면 뭘 배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수업 같다. 딴짓 안 하고 열심히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다니. 어차피 잊어버릴게 뻔하니 맘 편히 읽자고 하기엔 아쉽다. 한 줄 메모라도 남길까? 기왕 모처럼 맘먹고 읽었는데, 다 잊어버리면 마음이 허하지 않을까? 차라리 깔깔대며 스트레스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볼까? 다행인 건가? 갱년기를 핑계라도 댈 수 있는 나이라서. 또 코로나 시국이라 코로나 블루, 레드 다들 우울하다고 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팡질팡 많은 상념 속에 도서관에서 1년 동안 600권 넘게 책을 빌려다 읽었다. 역시 기억나는 책 제목은 많지 않다. 아주 오래전 읽은 것처럼 뭐라 딱히 감상평을 하기도 어렵다. 가장 최근에, 신기할 정도로 벅찬 감격을 주었던,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책만 생각난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내가 코로나 기간 동안 읽었던 책은 내 삶과 너무 가까워서 잊어버릴 수 없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책의 주제가 바뀌면 내 삶의 방향도 달라졌다. 마치 내 삶의 집중력을 작디작은 조각으로 부서뜨린 기분이 들만큼 내 생각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손이 가는 대로 읽다 보니 책이 내 삶을 지휘했다. 책의 정글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책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책을 읽고 내가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난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이 기억조차 흩어지기 전에 정리를 해두고 싶다.
서가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마음은 쉼을 얻는다. 책을 읽으며 정신적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는지 모른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그러면 흡사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품에 안긴 것처럼 잠시라도 구원받은 것처럼 안도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어쩌면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더 똑똑해질 거라고,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책 읽는 시간이 마치 확실한 보증 수표라도 된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무턱대로 이렇게 읽고만 있다가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아무것에도 꿰이지 않은 구슬처럼, 엮어내지 않으면 하나의 고상한 취미이자 한 때의 자기만족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러기에 중년의 나는 너무 젊지 않은가. 그러자면 적당한 심심풀이로 책을 읽는 대신 걷거나 뛰거나 몸의 근육을 이용한 활동을 배우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읽을 텐가. 딱히 나에겐 방도가 없었다. 마음의 우울을 몰아내기 위해 계산 없이 손 가는 대로 무턱대고 읽을 수 밖에는.
대학을 떠나 처음으로 하루 오전이나 오후 내내 시립 도서관 자료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가 출입 허용시간은 최대 4시간이다. 4시간이 지나면 방역 시간, 모두가 퇴실해야 하니 다시 집에 가거나 근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도서관 앞 나무 벤치에 앉아 있다 다시 입실하면 된다.
서가의 넓은 창은 멍 때리기 좋다. 때로 눈을 들어 창밖으로 비치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나를 오래전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타임머신을 태워준다. 대학도서관, 친구도 없이 혼자 지켰던 서가의 묵은 책 냄새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건 잃어버린 이상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 멍을 때리며 있는 게 집에서 한숨 쉬며 누워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코로나 기간 내 생각은 그랬다. 집에서의 일상,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소소한 일은 내게 좌절을 주었다. 잘 해내지 못했으므로.
난 왜 이런 것도 못할까 아우성치는 소리를 과거에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를 낳고 집에 머물 때 극심한 우울증을 겪을 때였다. 갓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잘 키우고 싶어 몽땅 육아서를 읽었지만 책처럼 되지 않았다. 교과서대로 몸무게가 늘지 않으니 우울했다. 우울증 인지도 몰랐으니 어떻게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삶을 놔 버렸고, 황금 같은 시간을 황망하게 보내버렸다.
호르몬 변동이 극심한 갱년기, 이번에는 그놈의 우울이 나를 망치지 않도록 꼭 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대로 생각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했다. 다 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집에 있는데, 정작 아이들은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해야 하기에 일을 그만두었지만 정작 잘하는 게 여전히 하나도 없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20대이다. 방황하는 청춘이었지만 깔깔거리고 웃으며 모험도 많이 했으니까.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만큼은 확실하게 있었으니까. 내가 뭘 좋아했지? 천천히 생각해보자 마음먹으니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퍼뜩 생각이 낚인다. 당연히 책, 노래, 여행이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중년의 기억력이 아이러니하게 편리할 때도 있다. 별 볼일 없는 일상의 현실이 세차게 후려치는 바람 같다. 나를 막 사정없이 때린다. 그 바람을 피하기 위해 잠시라도 도서관에 가 책을 펼치면 모든 것이 쉽게 잊힌다. 책에서 눈을 떼면 다시 폭풍우가 들이닥치기를 반복하니 도서관은 폭풍 속의 눈 같았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일 뿐인데 폭풍을 벗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세상만사 다 잊도록 고요 속에 나를 집어넣었다. 마치 일상을 넘어 높은 곳에 있는 글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거라 착각했다. 행복했다. 아니 안심했다. 혹시 조울증일까 의심스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책을 읽으면 차분해지고 책에서 눈을 떼면 불안해지는. 도서관이 내게 약이다. 우울증 처방약. 매일 복용하면 된다. 맘에 드는 도서관을 골라서.
시립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이 한정되다 보니 책 사냥을 하러 또 다른 도서관을 찾아 나선다. 어떤 서가는 널따란 창도 넓은 책상도 아니지만 공원에 자리 잡아 초록빛 내음만은 맡을 수 있다.
가끔 밖에 나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힐링이다. 인적 드문 곳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벤치에 누워 눈을 감는다. 고개를 일부러 높이 들지 않아도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시야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그러면 약속이나 한 듯 다시 타임머신이 비슷한 추억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간다. 정겹게 찰랑이는 파도 소리가 잘 왔다고 반겨주던 힐링의 순간으로. 무언가에 엉켜버린 마음이 풀어진다. 잊고 있었던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좋은 경치를 보는 순간, 상쾌한 바람과 서늘한 물을 느끼는 순간, 좋아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이라더니 정말 그렇게 행복은 일상 속에서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까.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싶다.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는 행복을 찍는 사진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넓은 창이 드리워진 서가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