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가 언급된 것은 문체 때문이었다. 한 수강생이 은희경 <새의 선물>이 인생 작품이었다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작가의 문체 필사하기' 숙제로 소개했다. 그 작품이 자신이 살아온 시대적 맥락을 잘 소개하고 있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단다. 작가 선생은 은희경의 글이 도시 배경의 세련된 문체였다고, 정경린, 양귀자, 신경숙의 문체와 은희경 이전 시대, 박완서와 같이한 대단한 단편작가로 오정희를 언급했다. 문체와 글은 따로가 아니라면서 문체 공부에 좋은 작가라 했다.
<중국인 거리>를 만났다. 글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요즘은 다 짧게 단문으로 끊어 쓰라던데, 와, 오정희의 글은 숨이 넘어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길고 긴 묘사로 이어지는 문장이 많다. 부사의 묘미를 살린 문체다.
‘올올이 흩어져 대글대글 이빨에 부딪히던 밀알들이, 달고 따뜻한 침에 의해 딱딱한 껍질이 불고 속살은 풀어져 입안 가득 풀처럼 달라붙다가 제법 고무질의 질긴 맛을 낼 때쯤이면 철로에 닿게 마련이었다.’
긴 문장도 문장이지만, 짧은 문장에도 이미지가 많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짚수세미에 아궁이에서 긁어낸 고운 재를 묻혀 번쩍 광이 날 만큼 대야를 닦았다.’
‘드디어 화차가 오고 몇 번의 덜컹거림으로 완전히 숨을 놓으면 우리들은 재빨리 바퀴 사이로 기어들어가 석탄가루를 훑고 이가 벌어진 문짝 틈에 갈퀴처럼 팔을 들이밀어 조개탄을 후벼내었다.’
‘물살을 가르며 사납게 웅웅대던 바람은 그 날카로운 손톱으로 비듬이 허옇게 이는 살갗을 후비고 아직도 차 안에 질척하게 고여 있는 쇠똥 냄새를 한소금씩 걷어내었다.’
‘평생 서리서리 뭉쳐둔 한인걸요.’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을 뭉뚱그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오감을 다 활용한 문장들이었다. 소리가 들렸고 색이 보였고 인물의 심리가 보였다. 성격이 보였다. 감수성이 많은 젊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무미건조하고 나이 많은 내가, 이제야 글쓰기를 배우는 왕초보인 내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문체로 보였다. 이런 글을 보면, 내 글은 심심하고 지루한 설명글에 불과하다.
난 어떻게 써야 하지? 답이 보인다. 등장인물은 최소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어차피 안 되는 묘사는 빼버리고, 이야기만이라도 예측하지 못하게, 빵 터지는 걸로.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아! 어떻게 그거라도 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없을까? 다음엔 꼭, 꼭 왕초보도 쉽게, 모방 가능한 작품 알려달라 해야겠다. 근데, 그런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