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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Jul 28. 2023

인생의 결정적 순간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말로만 듣던 시인이었다. 왜 그렇게 그에게 열광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책을 읽고 글쓰기를 배워야겠다며 도서관 문을 두드린 순간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시인이었다. 백석, 그의 시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대단한 시인인가 보다 짐작만 할 뿐이었다. 


<백석평전> 이 책이 토론을 위한 도서로 꼽히지 않았다면 그의  평전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그가 쓴 시는 오래된 언어처럼 낯설었다. 지역 방언으로 쓴 시라 누군가 쉽게 현대어로 바꿔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색함을 이겨내고 평전을 끝까지 읽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그를 알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지금 아니면 내가 또 언제 백석평전을 일부러 읽겠는가.


모던보이. 남들 20전짜리 양말 신을 때 1원, 2원짜리 양말을 신으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던 시인. 얼마나 미남이었으면 흠모하는 여인들이 그리 많았을까. 연예인 같은 매력남이었나 보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넓은 스펙트럼의 시를 썼다는 그는 흠모하는 여인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친구가 그녀를 낚아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 우울한 시대가 그의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시를 쓰고 마음껏 발표할 수 있었고, 모던보이라 불릴 만큼 여유롭게 살 수 있었으니. 


국어책, 역사책에서 익숙한 사람들이 그의 평전 속에 등장했다. 안데르센처럼 그 역시 상류세계의 사람들을 만난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었다. 문학 세계를 이끌고, 한 국가를 대표하는 리더들과 함께 생활한 작가였다.

안데르센의 인생은 세월이 흐를수록 좋아졌고 혹독한 비판 대신 찬사로 인정받아 말년이 행복했다. 백석은 정 반대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해방 후 북한이 고향이라 북에 살았던 그는 정치적으로 꼬였다. 걸출한 인물을 길러낸 오산학교 출신답게 재능을 발휘하고 수많은 인맥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재능과 인맥 때문에 조만식과 연결되었다. 조만식이 정치적으로 성공했다면  백석의 인생은 달라졌을 수 있다. 결국 삶은 누군가를 만나느냐,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백석이 서울에 남았다면, 그의 친구 허준이 월북을 하지 않았다면 백석의 두 번째 시집이 세상에 나왔을 수 있다.    


북한에서 그는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했다. 서정시가 북한에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발표한 동물 동시 때문에 삼수갑산으로 밀려난 그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남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시기를 겪고 그의 인생은 저물었다. 글을 쓰지 않고 살아간 그의 말년은 행복했을까. 그는 정말 쓰지 않았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해금되었고 손꼽히는 시인으로서 핫한 사람이 되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이 내 주변에도 있어, 말로만 듣다가 나도 그의 평전을 읽었다. 측은지심 한 마음으로 가슴 아팠다. 내가 시를 배운다면 그의 시 세계를 알게 되리라. 더 깊이 시인의 일생을 이해하게 되리라.    


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내가 한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백석은 자기 속내를 그대로 직접 토로하지 않고 지나가는 글자들로 말하게 했다.  - 흰 바람벽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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