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스랑 Aug 01. 2023

미안합니다

임현 - 고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관통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여름이다. 단편을 하나 읽고 사유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다음 단편을 읽고, 또 다른 단편을 읽다 보니 맨 처음 읽었던 단편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섯 편 모두 훌륭한 작품인데도 내 마음에 기록되고 남은 것이 잊혀졌다는 아쉬움에 끄적인다. 단 몇 줄이라도.


임현 - 고두, 2017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

어학사전을 돌렸다. 고두 뜻이 명확히 잡히지 않아 제목이 무얼 뜻하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읽었다. 재차 읽으니 '공경하는 뜻으로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걸 뜻한다'는 걸 알겠다.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추측해 소문을 만들어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속성일까. 한 여학생이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에 휩싸였다는 걸 알게 된 윤리 선생이, 그 아이의 처참한 처지를 도우려다 벌어지는 강렬한 이야기이다.  드라마가 되었다면 서사는 달라졌을까. 소설에서 복수는 없다. 


시작은 이렇다. 국가유공자였던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은 불편하다. 후에 윤리교사가 된 아들의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라, 그게 더 이득이라고 한다. 남을 위한 칭찬은 곧 나의 평판으로 이어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밑거름이 된다, 당장 손해처럼 보여도 나중 이익을 담보하는 것, 손해가 아니라 투자, 선물 아니라 거래. 

뒤에 이어지는 짧은 단편의 강력한 서사를 다 빼고 이 부분에 포스트잇 하나를 붙였다. 마치 윤리선생의 훈계를 확실하게 되새기려는 듯. 불편한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터득한 것을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물에게서 거리를 둔다. 왜 작가는 많은 직업 중 윤리 선생으로 인물을 등장시켰을까. 윤리선생이라면 저지르지 말아야 일을 벌였기 때문에 더 극적 서사가 될 수 있어서 일까.  

그가 연주에게 처음 내뱉었던 말, "그래, 바쁜데 미안하구나." 미안하다는 말, 대학 때 룸메이트였던 어느 일본학생이 내게 말했다. 일본인들은 상대방과 엮이고 싶지 않을 때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한다고. 그 말은 진짜 미안하기보다는, 나는 너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야, 라는 말이랬다. 살짝 웃으면서 먼저 미안하다고 함으로써  더 이어질 수 있는 논쟁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상관없는 관계를 만든다고 했다. 그래, 미안하니 너는 네 갈 길을 가라, 그게 예의를 차린 일본인의 속마음이라고 했다.

임신한 연주가 꿇는 무릎은 다르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건 아무래도 잘못이니까." 그러고선 연주는 사라졌다. 학교에서.    

수년 후 한 아이의 엄마로서 연주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사죄하기 위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건 사고였어요."


작가는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와 아들을 다시 등장시켰다. 아들이 자라서 아버지가 된 주인공이었다. 

보호관찰처분을 받고 구치소에서 막 나온 한 사내아이에게 머리통을 휘갈기며 "너는 네 부모에게 미안하지도 않니?" 아버지만이 아들에게 할 교훈을 늘어놓았다.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이어지는 말이 내가 빨간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그 부분이었을지도.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거야. 마땅히 지킬 것을 지켜. 그게 이득이야. 남을 칭찬하라고. 그게 네 평판이 될 거야. 당장 손해 같아도 나중에 이익이 되는 거야. 상대가 밉상이더라도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려. 찝찝하고 불편하더라도. 

그게 나라도 뭐 달랐겠니.


이제 그냥 관통해 사라지지 않고 짧은 사유가 되었다. 

 

이전 21화 인생의 결정적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