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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리 Apr 11. 2023

조카와의 에피소드 1

신발을 잃어버린 조카의 이야기

느슨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가 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가온이 데리러 태권도장에 좀 가야겠다. 유치원에서 자기 신발이 없어져서 유치원에서 태권도장 올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울고 있단다.”


뭔 일인가 싶으면서도 십여 분을 목놓아 울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바빠지기도 해서 점퍼 하나만 걸치고 신발 한 켤레를 챙겨 갔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태권도장이라 빠르게 걸으면 오 분 내외. 엘리베이터는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권도장이 있는 5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올라가자마자 가온이 상태를 알고 싶어 도장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어제 전화를 개통한 규빈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받았더니 이제 곧 축구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을 탄다고, 학교에서 나가는 길이라고. 그리고 게임 하나를 다운로드하여도 되냐고. 급한 마음에 일단 집에 와서 얘기하자고 하곤 가온일 데리러 태권도장에 와있다고, 그러니 축구학원 갔다가 집으로 오라고 얘길 하고 끊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똑같은 도복을 입고 앉아 있으니 가온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사범님께 가온이 데리러 왔다고 하니 큰 소리로 가온이 이름을 부르고 데려 나온다. 나는 목놓아 울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 마음이 놓였다. 터덕터덕 나오더니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이 더 터진다. 그래도 이모라고 마음이 놓였던 걸까. 울먹이며 자초지종을 얘기하는데 누가 자기 신발이랑 같은 걸 신고 왔는데 자기 걸 신고 갔다고... 몸집이 아주 큰 사범님이 큰 몸을 접어 무릎을 접은 채 앉아서는 이런저런 얘길 해준다, 울음을 그치지 않다가 조금 사그라들었는데 이모가 오니 또 우는 것 같다고... 가온이에게 물었다.


“집으로 갈까? 아님 태권도할래? 기분이 어때? 괜찮아?”


선택을 내가 아닌 조카가 하면 좋겠단 생각에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물었다. 답은 집에 갈 거냐 태권도장에 남을 거냐였지만. 바로 대답을 못하길래 반대로 천천히 태권도장에 있을래 했더니 고개를 젓길래 집에 갈까 했더니 그러잔다. 답을 듣고 사범님이 가온이에게 가방을 챙겨 오라고 했다(태권도는 자립심을 키우는데 진심인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가방을 챙겨 오고 사범님께 인사를 하고 잃어버린 신발과 똑같지만 사이즈가 다른 신발을 손에 쥐고 오빠가 신던, 세탁이 되어있는, 신발을 건넨다. 그랬더니 그치지 않는 울음과 함께 신발이 크다길래 깨끗한 신발을 가지고 오느라 그랬다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찬찬히(사범님이 계시지 않으니) 무슨 일이냐고 설명을 해달라고 했더니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기 나름대로 설명을 해준다. 자기랑 같은 신발을 신은 아이가 같은 신발을 신고 갔다고, 몰랐는데 신발을 신고 보니 작았다고, 자기 신발을 놔뒀던 자리에 신발이 없어서 이리저리 신발을 찾아다녔는데 최하연이란 오리온반 친구가 신고 간 것 같다며... 아는 친구냐고 물었더니 그렇진 않고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인 김하은이 같은 태권도장(가온이와 다른)에 같이 다녀서 얘길 들었다며...


“가온아, 괜찮아.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어. 게다가 신발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내일 친구한테 말해서 찾으면 되잖아. 큰 일 아니야! 그런데 가온인 엄청 놀랐겠네. 이모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엄청 놀라서 우왕좌왕했겠는 걸. 내일 신발 찾으면 되니까 뚝 하자.”


별 것 아닌 일이 조카에겐 아주 큰 일일 수 있단 사실을 아주 살짝 깜빡할 뻔했는데 다행히 짚고 넘어갔다. 이건 이전의 나라면 아마 무신경하게 지나갔을 법한 일이지만 이젠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내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나 아닌 타인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타인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나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이니.


아이들은 어렵다. 귀여운데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까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내 조카들이 언제 어디서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면 주위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린이가 되면 좋겠단 바람이 있다. 이는 자신의 니즈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린이와 그 요청에 흔쾌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많아졌음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조카들을 보며 참 많이 배운다, 많은 걸 느낀다. 잘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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