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14
심연의 바다로 가라앉는 몸과 마음을 간신히 정신이 이겼다. 눈을 번쩍 떴다. 어딘지 모를 길을 달리고 있기에 기사님에게(가장 앞 좌석에 앉음) '비안날?'이라고 물었더니 한참 남았다는 듯한 대답을 하셨다. '그래? 그렇다면 눈 조금만 더 붙이자' 싶은 마음에 살짝 눈을 감았다... 가 다시 눈을 떴다(나에겐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주변 풍경이 한적한 시골길로 바뀌어 있다. 계속 기사님에게 물으면 귀찮아하실 것 같아 구글 맵을 켰다.
응?????
으응??????!!!!!!
나... Fao 지났네????!!!?!?!?!?????!!!!
그렇다, Fao는 애초에 지나치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차는 달리고 있었다.
잠깐 사이, 예약해 둔 호스텔과의 의리(?)를 위해 지금이라도 내릴 것인가 어딘지 모를 비안날이라는 곳을 갈 것인가 고민했고 내 안의 '자아 의지'와 내 안의 '이것도 운명'이 싸우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이것도 운명'이 이겨서 비안나로 가보자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사실 몇 가지 징후가 있었다. 원래 있었던 곳에서 비안날 가는 버스를 타고 4.3 €를 지불했던 것(포르투에서 나오면서 냈던 2 €에 비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간 가격 차이라고 생각했다), 대략 차로 26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 게 40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있단 것. 물론 자차와 버스가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긴 하지만 이리 큰 차이가 날 건 아닌데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징후를 그냥 무시했던 것,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과정 안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비안날로 가자고 마음먹고 Fao 숙소를 취소하기로 했다. 내가 예약해 놓고 못 가는 것이기 때문에(아, 그래서 이런 이유로 알베르게는 예약이 필요 없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미안한테 오늘 거기에 투숙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취소가 가능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혹시 가능하지 않다면 숙박료를 보낼 계좌를 알려달라. 꼭 가고 싶었는데 못 가게 돼서 아쉽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알려줘서 고맙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 오게 되면 연락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다음에 만날 수도 있지 않냐며 행운을 빌어줬다. 그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착하게 살아야겠단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비안날이라고 들었던 곳의 정식 지명은 Viana라고 하고 조금 규모가 있는 중소 도시의 느낌이 난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 정신줄을 잡고 숙소 검색을 했다. 이렇게 하루 온 김에 푹 쉴까 아님 지금이라도 근처 알베르게에 갈까. 알베르게에 가면 내가 푹 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혼자 지낼 수 있는 저렴이 호텔을 검색했다. 호텔이 그리 많지 않고 비싼 곳은 비싸서 게 중에 싼 곳, 하지만 호텔로써의 기능을 제대로 하는 곳, 지금 내가 있는 곳과의 거리가 멀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앉아 있는 곳에서 900m라 거리도 나쁘지 않다. 거리가 중요했던 이유는 발은 발대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고 짐도 7.5-8 kg에 육박하므로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작은 골목골목을 지나 큰길을 마주하니 호텔이 보였다. 큰길을 건너야 해서 차들이 가도록 기다렸다(찻길에서 박자를 잘 못 맞추는 사람이라). 차들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길을 건넜다. 리셉션에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도 보여주며 도장을 찍어주냐 물었더니 찍어준단다. 아침 식사가 포함되지 않은 방인데 내일 아침을 8 €에 특별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평소 가격은 12 €란다. 내일 아침까지 여유를 맘껏 즐겨보잔 생각에 그러고마 했다(유로화에 대한 감각이 아직 없다, 글 쓰는 지금 생각해 보니 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크레덴시알에 세오(도장)를 받고 방으로 올라왔다.
무거운 짐을 일단 의자에 놔두고 다른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움직임도 취하고 싶지 않은 상태라. 사서 고생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면서 한동안 그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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