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를 좀 늦게 한 편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고, 대학에 가서도 혼자 좋아하기만 해 봤지 상호적 호감과 감정이 순환되는 연애, 아니 '썸'을 경험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썸이든 연애든 내가 생각하는 감정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3대 성립 조건은 끌리는 외모 - 시각의 지배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거부하기 힘들다. - 타이밍 그리고 내 마음 상태인 것 같다. 잘생기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 인연이 닿아도 타이밍 또는 내가 누군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인연이라는 가능성은 부질없다.
10대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누군가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지독히도 미련하게 열심히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그 사람의 얼굴, 좋아하게 된 첫 순간을 떠올렸을 때 마치 세밀한 신경세포 전체가 깨어나는듯한 전율이란, 마치 불로 이길 수 없는 물을 이긴듯한 전례 없는 뜨거움과도 같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이 요구되는 매우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어느 감정이든 최대치(pleateau)가 있다고 한다. 한계가 있다는 소리다. 그 한계점에 다다르면 더 이상 감정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동시에 에너지와 감정이 사그라든다는 그 상태, 즉 감정의 포물선이 그려진다고 한다. 나 혼자 좋아하는 감정을 계속 가꾸어오다가 그 이상 혹은 사랑을 해볼 포부가 있다면, 그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인 것이다. 사랑이란 단순히 호감을 넘어서 사랑하기로 한 상대방의 살아온 인생, 형성된 인격, 그리고 세계관을 온전히 수용하기로 한 무한의 용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나누는데 상당히 이기적이었던 20대 초반의 나는 좋아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변하는 정지선 앞에서 머뭇거림도 없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었다. 그 거대한 기회를 거부하며, 나는 내게 아무잘못한 적도 없는, 내가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생각했던 사람을 심장 속 상자에서 꺼내 이성이 지배하는 머리로 가져가 소각하는 행위를 자주 치렀다. 아무도 하찮은 나 따위의 감정에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과일가게 남자.
베네딕트 거리 62A 번지 맞은편에는간판도 없는 로컬 야채 과일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엔 190cm 이상되는 큰 키의 윤기 나는 고동색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한 남자가 있었다. 웨일스 애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출신인 그는발라클라바 앤 대드 (Balaklava and Dad)란 로컬 인디밴드의 드러머 겸 과일가게 점원이었다.
여느 토요일처럼 나는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활짝 열어 아침 햇살로 차갑고 축축한 방의 뻐근한 기운을 깨우며, 커피를 내렸다. 따뜻한 커피를 H&M 스웨터로 반쯤 감싼 손바닥으로 움켜쥔 채 다시 창밖을 볼 수 있는 침대 위에 앉아 과일가게로 배달되는 야채와 과일박스, 거리의 행인들을 바라보는 아침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주말 아침을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오전 근무를 마친 그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그는 긴 팔로 손을 흔들면서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 나는 평소엔 잘 가지도 않던 그 과일가게에 습관처럼 거의 매일 들르는 단골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탱글탱글한 체리를 사서 나오던 날, 뒤에서 '저기요(Hey!)'라고 하는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황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아직도 당신 이름을 모르네요 - Hey, I still don’t know your name.”
그가 내게 한 말 중에 가장 길고 개인적인 저 문장을 듣는데, 또 심장이 방정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문어적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서는 말이다.
"네? - Sorry?"
"내 이름은 리오예요. - I'm Leo, what's yours?"
그는 미소 지으며 자기 이름이 리오라고 했고, 내가 놓고 온 영수증을 주었다. 그 종이 뒷면엔 그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 날 하루 종일 방정맞은 심장박동수와 붕붕 뜬 기분으로 진정할 수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날 그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는 과일가게 단골-점원에서 조금 더 발전된 사이가 되는 듯했다.
첫 데이트, 그리고 내 이기심.
그는 정말 다정하고 멋있었다.
우리가 처음 과일가게 밖에서 개인적으로 만난 날은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었다. 그는 그가 정기적으로 공연한다는 플레이하우스 노리치 바 (PlayHouse Norwich Bar)에 데리고 갔다. 그는 자기가 사겠다며 본인은 화이트 러시안(White Russian)을 나는 그가 추천한 이름 모를 분홍빛 칵테일을 마셨다. 처음 5분은 문자 그대로 '어색'했는데, 초반의 어색함을 극복한 후 어둑해질 때까지 동네를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는 내가 영국으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와 함께 내가 혼자서 자주 거닐던 보석 같은 길인 엘름 힐(Elm Hill)을 같이 걸었을 때, 서로의 손가락 끝이 닿았고, 우리는 최초의 신체접촉, 손을 맞잡은 채 서로가 좋아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밴드들의 음악 12곡을 CD로 구워 편지와 함께 내 플랫(flat) 편지함에 넣어두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그 편지엔 우리의 첫 데이트가 즐거웠고, 그의 선곡을 좋아하길 바란다는 내용과 함께 고향에 잘 다녀오겠다는 말들이 정성스럽게 적혀있었다. CD 케이스를 채우는 초록색 반짝이 종이와 함께,
엘름 힐 (Elm Hill) (출처: Easter Daily Press)
그는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몇 달간 나 혼자 좋아했던 감정이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조금 더 특별한 사이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감지한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2008년 새해가 다가왔다.
노리치로 돌아왔다는 그의 문자 메시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신나게 열어젖히던 커튼도 굳건히 닫아놓고, 그 과일 가게를 피해서 에둘러 멀리 돌아 학교와 아르바이트 장소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못돼먹고 답답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인연에서 조금 더 발전된 관계로 가는 그 과정, 그 애매한 관계에 놓여있던 주제에 나는 매우 일방적으로 감정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노리치를 떠났다.
2011년 9월, 벨기에에서 거주증을 받자마자 친구들을 만나러노리치로 갔다. 친구들과의 재잘거림이 끝나고, 런던행 기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남아 베네딕트 거리로 향했다. 거리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가려던 그를 보았다. 내가 애정 했던 그의 곱슬머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 눈이 그의 밤색 눈동자를 마주친 그 순간 그는 재빨리 자전거에서 내려 나를 꼭 안으며, 잘 지냈냐고 물었다. 그는 마치 나를 어제 본 사람처럼,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포옹으로 대신하는 듯했다. 우리는 15분 남짓 같이 걸었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나는 그의 큰 보폭에 맞춰서. 그리고 그는 그의 길을, 나는 노리치 역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턱없이 부족한 용기, 나 혼자만 그를 좋아했던 감정에 사로잡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은 눈곱만큼도 없는 어쭙잖은 내 이기심과 서투름이 초래한 결과라고나 해야 할까. 내 이기심은 아마도 그에게는 별 것 아닌 어리둥절함으로 남아있겠지만 말이다.
클로버 클럽, 그리고 몽키 47
그와의 첫 데이트에서 내가 마셨던 칵테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클로버 클럽(Clover Club)을 만들고 마실 때마다, 주책맞았던 20살의 심장, 그의 얼굴과 내 인생 첫 데이트 때 느낀 감정들이 종합적으로 떠오른다.
클로버 클럽은 금주령 이전 1800년대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던 벨레부 스트랫퍼드 호텔(Bellevue-Stratford Hotel) 내 남성 전용 사교 클럽 'Clover Club'에서 처음 소개된 칵테일이다. 이 칵테일은 살모넬라 균의 위험성(원래 레시피는 계란 흰자(egg white) 1개를 포함)으로 인해 금주령 시기 그리고 그 이후에도 비인기 종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클로버 클럽은 200년이 흐른 지금도 대표적인 클래식 칵테일 메뉴로 존재한다.
나 역시 계란 흰자가 들어가는 칵테일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날 계란이 들어가는 칵테일은 질감/시음 감(texture)을 부드럽게 한다고 하는데, 잘못 제조된 칵테일은 굉장히 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 접대용으로 이 칵테일을 만들 때면 가끔 내 인생 최초의 데이트가 떠올라 만드는 즐거움이 매우 크다.
소수인원만 방문 자격이 주어지는나의 홈바(Fringelife bar)에서는 클로버 클럽 제조용 진으로 몽키 47(Monkey 47)을 사용한다. 이 진은 ‘#2. Bee’s Knees’에서 일부 설명했듯 독일 서남부 지역의 블랙 포레스트 지역에서 출시된 술이다.
몽키 47 진 (Monkey 47 Gin) (출처: Monkey47 공식 웹사이트)
몽키 47은 몽고메리 콜린스(Montgomery Collins)라는 영국인의 인생을 추억하고자 만든 술인데, 외교관의 자녀였던 콜린스는 유년시절을 인도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보냈고, 공군 시절은 베를린에서, 말년은 블랙 포레스트(Schwarzwald)에서 보냈다. 몽키 47 창업자가 우연한 기회에 콜린스가 남긴 진 레시피를 발견하면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증류주 마스터 장인(Master distiller)과 함께 본격적인 진 제조에 돌입했다. 아시아 향신료, 블랙 포레스트에서 나오는 베리, 과일, 허브 등 47개 재료를 배합하여 탄생한 술. 이 진의 비밀 무기(Secret Weapon)는 바로 월귤 혹은 링곤베리(Lingonberry)인데, 이 베리류는 스웨덴식 미트볼 요리에 곁들여 먹는 잼의 주원료이다. 첫맛은 매우 신데, 끝 맛은 달고 떫다.
[클로버 클럽 레시피]
몽키 47 진 60ml
레몬즙 20 ml
시럽 20 ml
계란 흰자 1/3 (알끈 제거, 8-10ml 정도)
라즈베리 5알
1. 계란 흰자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쉐이커에 넣고 섞는다. (드라이 쉐이크(dry shake))
2. 라즈베리 건더기를 제거한 후 섞인 재료를 다시 쉐이커에 얼음을 넣고 10번 정도 섞는다. 계란 흰자를 넣고 30번 정도 섞는다. (웻 쉐이크(wet shake)
3. 칵테일 잔 혹은 마티니 잔에 두 번 체에 걸러 칵테일을 따른 후, 라즈베리로 장식한다.
이 칵테일을 만들 때마다 다정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었던 그, 혼자만의 생각에 가둬두었지만, 내 인생 나름 황홀했던 날들이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