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주절주절!@#$%? Part_2
!@#$%? Part_3
꼰대가 되고 싶습니다. 꼰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아직 꼰대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이미 꼰대일 수 있으니깐요. 내가 되기로 하고 결심한다고 해서 함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꼰대가 되길 원하는 이유는 꼰대만이 MZ에 맞설 수 있다 믿기 때문입니다. 자칫 세대갈등을 야기하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네요. 확실히 말하자면 "세대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픈 마음은 없으나, 갈등이 생겨도 좋지 않을 이유도 없다."란 입장이라 할까요.
그럼 우선 MZ를 정의해야겠군요. MZ세대는 1980년부터 199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M)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입니다. 내가 구분 짓고자 하는 건 MZ이지 MZ세대가 아닙니다. 밀레니엄(서기(西紀)를 기준으로 천 년의 기간을 이르는 말)M과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의 합성어로 말하자면 천년의 디지털 원주민 혹은 2000년대 디지털 원주민 정도로 해석하더군요. 어쨌든 인터넷, 모바일 장치 및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능숙하며 이런 것들이 문화 경제 사회성 등등 삶을 관통하고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라 생각한다 피력해봅니다. 물론 이런 탄생 배경 같은 것들이 이 집단의 특징을 명료화하거나 한 마디로 간소화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거의 뭐, 과학기술이 삶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째로 삼켰다고 해도 비약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이패드와 맥북 사이를 오가며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나……. 더는 종이에 글을 쓰지 않으며, 필기도 이젠 애플펜슬을 쥐고 쓰고 지웠다가 다시 되돌렸다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빈손으로 외출해본지가 언제인지……. 이젠 휴대폰으로도 글을 쓰는 게 좀 뭔가 호흡이 따라주지 않은 것 같아서, 더 나은 기기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 미쁘지 아니한가를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플 이벤트나, WWDC 같은 행사를 보며, IT기술에 열광하고, 전부 다 살 것도 아닌데 괜한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MZ는 아닙니다. 디지털 기기의 노예나 다름없지만, 그들처럼 잘 다루진 못합니다. 그저 글을 좀 쓰거나, 유튜브 보는 용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꼰대에 더 가까우나 꼰대가 되지 못한 이무기 같은 놈입니다. 꼰대가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꼰대의 특징이나 성질을 부릴 수야 있겠지요. 예를 들어 "라떼는 말이야." "무례한 말과 구태연한 상고 방식 강요", "답정너" 같은, 이딴 건 꼰대가 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되고 싶은 꼰대는 '하나'를 충족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바로 "성공"입니다.
즉 "너나 잘하세요."
"너나 잘하세요." 이 말을 관통할 수 있는 "성공" 말입니다. "라떼는 말이야", "무례한 말과 구태연한 상고 방식 강요", "답정너" 짓에 대한 강력한 명분을 가질 수 있도록 "나는 너보다 잘하고 있다”는 일종의 스웩(SWAG), 플랙스(FLEX)라고 보면 좀 쉬울까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력이 뒷바탕 되어야겠죠. 말은 누구나 주저릴 수 있고, 무례는 얼굴이 두꺼우면 강력해지기 마련이라면, 꼰대는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 하나쯤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아주 잠시 당신은 꼰대가 될 수 있지만 유지하거나 지속하지 못한다면 꼰대를 부를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꼰대라 불리는 사람은 한 분야를 오래 종사했거나, 파고든 사람들(고인물)입니다. 그럼 당연히 먼저 그 길을 걷는 사람도 있고, 뒤따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적어도 뒤따르는 사람보단 그 분야에 대해서 아주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며, 적어도 한발 정도는 성공에 가까운 사람이란 말도 되겠지요. 제가 되고 싶은 꼰대는 이런 사람입니다. 무언가 시작이 늦었어도 파고드는 사람. 그래서 잘 익히고 습득해서 그 일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 말입니다. 사실 "라떼는 말이야", "무례한 말과 구태연한 상고 방식 강요", "답정너" 이딴 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는 저런 병맛 같은 특징에도 영향력과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는 나쁜 남자 스타일~
정작 "그럼 그건 꼰대가 아니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초에 듣기 싫은 말에 "옳고 그름" 따위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무단횡단이 도로교통법을 어기는 범법에 해당하지만, 차도 없고 바쁘면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웬 사람이 나타나 교통법규와 법률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장전 발사하면, 이 사람은 준법정신이 투절한 사람이구나! 깊을 깨달음과 성찰로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깨우칠 사람이 도처에 널렸다면, 분쟁이나 갈등 꼰대 같은 말이 왜 탄생했겠어요. 송구하나 나는 그런 공자나 맹자가 아니라서 게다가 쫄보! 앞에서 예~ 예~ 하다가 돌아선 왜 난리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 멀리 교통순경이 나타나면 달라지겠죠. 그는 꼰대니까요. 교통법규와 법률에 대해 늘어놓을 명분과 책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이런 걸로 사람을 가리는 나는 분명 좋은 놈이거나 착한 놈이거나 상식적인 놈은 아닙니다. 스스로에게도 깊은 유감을…….
그래서 에토스 (ethos)가 중요합니다.
듣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보다 먼저 존재할 수 었으니까요. 결국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따라 말의 영향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지점은 교통순경처럼 명분과 책임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책임 명분 실력을 갖기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여정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지요. 나는 얼마나 그 노력이란 여정을 지나고 있나 생각해보면 꼰대의 길은 저 멀리 아득하기만 합니다. 내가 찌질해진 이유는 그 여정에 뚝 멈춰서 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종착은 아득하기만 하고 되돌아가자니 너무 오랫동안 서 있어서 되돌아가는 길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제가 꼰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온통 "아이고! 죽겠다 처럼 "죽는소리"로 가득 칠해질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딴 개소리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