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비' List 2번
알람 소리가 들리면 눈을 잠시 떴다 이내 깊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아, 회사 가기 싫다. 난 언제까지 이렇게 무의미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의 활기찬 기운을 쫒아보내기라도 하듯 난 늘 한탄했고, 현재를 살지 못했다. 겉으론 주어진 삶을 누리며 사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가면을 썼지만, 내 근저에는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다. 부끄럽지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함에 원망한 적도 있었다. 우리 집이 돈이 많았다면 꽤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돈으로 인해 받은 수많은 제한들이 미웠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했지만, 그때의 나는 '자유'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저 그 단어가 주는 해방감을 동경했던 건 아니었을까?
난 경쟁이 힘들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야망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딱 '중간'만 하는 그런 대체 가능한 부품 같은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난 '반골기질'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직생활이 참 어려웠다. 불공정, 불합리, 술수, 비효율, 비상식적인 일에는 또 발 벗고 나섰던 양면성을 가진, 어쩌면 상사들이 싫어할만한 점을 두루 갖춘 직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윗선의 결정에 의해 소속 부서와 업무가 달라지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겪으며 주체성이 결여된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인프제(INFJ)가 조직생활을 특히 더 힘들어한다고 어느 글에서 본 것 같은데 그래서였을까? 난 조직 안에서 때에 맞는 가면을 매번 바꿔 쓰며 에너지를 소모했고, 자아가 점점 증발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혔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월급과 바꾸어버린 현실이 몹시 미웠다. 그렇게 회사가 힘들었으면서 왜 떠나지 않았냐고? 난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으며, 매달 나가는 월세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개인 사업이나 프리랜서를 할 만큼의 배포와 어떠한 재능, 능력이 없었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한심한 10년을 보냈다.
난 보통의 일상을 경시했다. 항상 '특별한'인생을 꿈꿨다. 지금은 비록 직장인의 그저 그런 삶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신께서는 나를 '특별한'삶의 자리로 이끌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살아갔다. 그 '특별함'은 반복되는 보통의 일상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난 습관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맸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그래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파울로 코엘료의 저서인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중에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온다. 베로니카의 숙모가 자살하기 얼마 전 베로니카에게 했던 말을 회상하는 것인데 이 짧은 문구가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여 한참을 그 문장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베로니카 역시 열정 없는 삶의 허무함 속에 절망했고, 짙은 공허함에 자살을 결심하지 않았던가.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만 같은 생각에 숨이 막혔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와 이유를 찾지 못해 무력하고 생기 없는 세월을 보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죽을 수 없어 마지못해 살아야 하는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통의 바다를 이리저리 유랑하다 죽음의 종착지에 이르러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허무하지 않은가?
사실, 아직도 여전히 '그럴싸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인생이 꼭 '그럴싸한'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라 우린 착각하지만,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는 사실을 왜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고유한' 나란 존재가 '고유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에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 성취하지 못해도, 이루지 못했어도, 실수하고 실패했어도, 세상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며 살지 못하더라도... 완벽해야 한다는 불안에서 스스로를 조금씩 놓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버티는 삶에서 누리는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해 난 오늘도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 속삭이는 내면의 소리와 싸우고 있다. 각양각처에서 '고유한' 존재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