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불편한 진실

나조차도 정말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다.

by 더 로사 The ROSA

급하게 눈을 떠 시계를 봤다.

오전 7시 30분.

예전 같았으면 급하게 알람을 끄고, 양말을 찾아 헤맬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급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운 뒤 집으로 왔다.

지수는 출근했고, 아이는 없다.

고요한 집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아이와 지수가 급하게 먹은 아침을 치운 뒤

노트북을 열고 회사 메일을 확인했다.

익숙한 제목을 눌러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 거기에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 있었다.

내가 맡기로 한 프로젝트 공지에,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재윤 과장.'

나보다 세 살 어리다.

실력도 좋고, 눈치도 빠르다.

담당자가 바뀔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내 자리를 후배에게 주게 될 줄은 몰랐다.

메신저를 열어 “축하한다”라고 보냈다.

잠시뒤 “감사합니다. 얼른 회복하셔서 복귀하셔야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아니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점심은 라면으로 때웠다.

먹고 나니 쓸쓸했다.

씻지 않은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거실에 앉았다.

텅 비어 있는 거실의 적막은 쓸쓸했다.


하원 시간이 되어 아이를 데리러 갔다.

내 모습을 본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아빠!"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질문에 송곳으로 찔린 듯 마음 한편이 아렸다.

“아빠, 회사 안 가?”

“응… 지금은 눈이 좀 아파서 쉬는 거야.”

아이의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봤다.

걱정도, 의심도 없는 호기심 가득한 눈.

그 뒤로 아이에게 한마디도 더 할 수 없었다

.

지수가 퇴근해 집에 돌아왔다.

피곤한 얼굴로 "힘들었지?"라고 묻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수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괜찮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이 안 와 거실로 나왔다.

TV도 안 켜고, 휴대폰도 내려놓고,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불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내가 있던 자리에 내가 없는 느낌.

‘괜찮다’는 말이 이토록 공허한 말일 줄은 몰랐다.

정말 괜찮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괜찮지 않은 사람만이 자꾸 그렇게 말한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정말 괜찮은 건지 모르는 채 계속 돼 내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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