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함께 하는 삶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지금 하루하루 숨 쉴 수 있어.”

by 더 로사 The ROSA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 낯설 줄 몰랐다.

며칠 사이 계절이 바뀐 듯, 바람은 따뜻해졌고

내 앞에는 지수와 아이들이 서 있었다.


아들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빠, 이제 집에서 자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신난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선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제 나는 다시 괜찮은 ‘가장’이 될 수 있을까.



퇴원 후 첫 주.

집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오랫동안 주말만 스쳐 가듯 지냈던 공간.

이제는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 머물게 될 곳.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칭얼대며 옷을 안 입겠다고 했다.

지수는 출근 준비에 바빴고,

나는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다.

“아빠랑 슈퍼맨처럼 옷 입어볼까?”

다행히 아이는 씩 웃으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

내가 가족 속에서 어떤 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회사에 복귀 요청을 넣었더니 인사팀에서는

“건강이 회복된 다음 복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같이 일했던 동료에겐

“천천히 와. 여긴 잘 돌아가고 있어”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를 위한 말이겠지만, 이상하게 불편함이 느껴졌다.


‘나 없이도 괜찮다’는 말일까.

나는 이제 '빠져도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저녁.

지수의 다크서클이 고된 하루를 보여주었다.

"당분간은 당신이 육아랑 집안일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가 말끝에 덧붙였다.

"… 미안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지수의 요청이 고마웠다.

내가 아직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아서...


밤이 되었다.

아이를 재운 뒤 거실로 나와 지수와 마주 앉았다.

조용히 차를 마셨다.

우리는 처음으로

진짜 '함께 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같았다.

“지수야.”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당신이랑 아이들이 웃을 수 있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야.”

지수는 나를 바라봤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지금 하루하루 숨 쉴 수 있어.”


그 말에 나는,

오늘 처음으로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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