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일주일살이를 준비하다.
정작 책이 예쁘게 엮어져 나왔을 때는 감정이 녹초가 됐다. 이 상황에서 기이하게도 허탈함마저 함께 왔다. 그대로 집에 있기보다는 한 바퀴 돌아오고자 물색하던 중 강진으로 마음을 정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벽 전례를 해결하는 것이다. 열흘 동안 세 번의 새벽 전례 당번인데 가장 절친인 은희 씨가 성지순례를 해외로 떠나서 도리가 없었다. 어렵게 주선하여 스리쿠션의 방법으로 바꾸긴 했으나 출발하기 한 주일 전에 바꾼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게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한 주에 내리 세 번의 당번은 그것도 해설이 연달아여서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다.
짐을 꾸려야 한다.
다른 소소히 필요한 것은 그이가 잘 챙겨주지만, 문제는 부엌 거리이다. 착착 챙기면 되지만 문제는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사면되고 매식하면 된다는 통에 양념하나 챙기는 것도 무안을 당하기 일쑤다.
나는 여행을 가면 현지 재료를 구해 와 가끔 밥도 직접 해 먹는 걸 원하지만 그리도 즐기는 행위를 못내 못마땅해한다.
허나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한 번이라도 틀린 적이 있었던가.
가장 기본이 되는 양념부터 챙긴다. 갓김치와 총각김치 그리고 오이지를 무치고 삭힌 고추도 양념하여 담는다. 여기에 누룽지가 필수다. 맛집은 찾지만, 그 많은 끼니를 챙기기엔 시간과 장소가 마땅치 않고 컨디션에 따라 집에서 간단히 때우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이번에는 <강진 일주일살이>에 관한 글을 써 볼 계획이다. 유홍준 님의 남도 답사 일번지라는 글로 많은 사람이 강진을 사랑하지만 나는 내가 보고픈 걸 보고 내가 가고픈 곳을 갈 것이고 내 먹고 싶은 걸 먹을 것이어서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의 피력이겠지만, 나름의 시각으로 강진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자면 노트북과 충전기를 챙겨야 할 것이고 두툼한 노트도 한 권 챙겨야지. 나름 성능이 좋은 펜도 가져가자. 나를 후원하는 지지작가의 명단도 가져가보도록 하자.
인터넷의 힘을 빌기로 했다. 사실 나는 제주도 한 달 살기와 영월 열흘 살기 등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강진은 그동안 강하게 남은 인상과 친구가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작년과 올해 내리 두 번을 나를 실망하게 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속마음을 더 알아봐야 했고 무엇보다 나는 손해를 봤기 때문에 섣불리 입 밖에 내기가 마땅치 않았다.
강진군 문화관광재단 관광마케팅팀(061-434-7995) 사이트에 날짜를 지정하여 가능하다는 숙소를 예약했다. 가우도가 가깝다고 했다. 아침을 먹기 전 한 시간쯤 걸리는 가우도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하여 무조건 엔터키를 눌렀다.
하루쯤 뒤, 그녀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강진 살이 예약했니?’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날짜도 일러줬다. 하룻밤 자고 나니 그녀에 대한 기억이 새삼 생각났다. 흔쾌히 마주 앉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예약 숙소에 전화해 취사할 수 있냐고 문의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단호히 ‘집에 냄새가 배서’ 나는 시골의 채소밭에서 푸성귀를 사서 장 된장에 무치고자 했다. 강진 마량항에서 물때에 맞춰 해산물을 사 와 매운탕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시골 민박집에서 밥 해 먹는 일주일살이를 원했던 것이다. 애초에 짚지 않은 내가 실수이긴 했으나 나는 가우도를 포기했다.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라서 빈 숙소는 남아 있었다. 나는 연밭이 어우러진 방죽을 지닌 ‘임이랑 농장’에 예약했다. 다만 다음 주까지 연잎이 서리를 피해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은근히 연잎 몇 장쯤 얻기를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