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사육제’를 읽고(‘25.1.24)
한강이 이십 대 초반에 쓴 단편들의 소설 모음집에 실린 책이다.
아름다움이며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 우리가 찾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한강은 어느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것을 쓰고 싶었다’ 던 그의 소설 가운데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훨씬 더 고통과 절망뿐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타인에 관한 관심과 애정의 흔적은 보인다.
전 재산을 잃고 이모 집에 더부살이를 시작한 영진의 이야기
영진는 농사꾼 부모의 7공주중 셋째다. 둘째 언니를 제외한 모든 딸은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다. 영진은 상고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 대학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조그만 무역회사의 경리로 입사하여 4년 동안 돈을 모은다.
영진은 길에서 우연히 고향마을의 샛길 하나를 두고 자란 앞집 인숙 언니를 보게 되고 그는 가진 돈을 반반씩 합쳐 전셋집을 얻자고 제안한다. 인숙 언니는 고등학생 때 부모를 3개월 사이에 잃고 홀로 상경하여 봉제공장에 다니며 어렵게 산다.
영진 또한 어렵게 월셋집을 전전하던 중이라 4년간 모아둔 등록금에 융자금까지 합친 돈으로 인숙 언니와 반지하 전셋집을 얻는다. 하지만 영진이 출근한 사이 인숙 언니는 집주인에게 영진의 전세금까지 받아서 도망간다.
오갈 곳이 없어진 인숙은 이모 집 아파트에서 사촌의 방에 들게 되고 식구들의 냉대 속에 눈칫밥을 먹고 지낸다. 영진은 쫓겨나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막 나가는 철면피 같은 사람으로 억세게 변한다. 아직은 추운 2월 영진은 이모의 요구로 베란다로 방을 옮기게 되고 교통사고로 받은 거액의 합의금으로 이사 온 명환의 눈에 띄게 된다.
명환은 건널목에서 임신 오 개월 된 아내와 교통사고를 당한다. 젊은 가장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명환은 무릎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는다. 가해 운전자는 그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사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명환은 상실감과 증오를 불태우며 근처로 이사와 놀이터에서 노는 가해자 부부의 두 아이를 노려보거나 그 부인에게 찾아가 행패를 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부부는 명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며 돈 봉투를 두고 간다. 명환은 그것들을 현관에 뿌린다.
가해자가 진심 어린 용서를 빌자 명환은 복수의 의지를 잃고 영진에게 자신의 집을 받아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영진은 거절한다.
명환의 불빛은 가족이었다.
명환의 꺼진 불은 증오심과 복수의 불을...
복수의 불빛도 꺼진다. 명환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
영진이 삼각산의 양지바른 곳, 삼양동으로 이사하던 날.
영진은 명환의 죽음을 본다.
머리가 흔적도 없었대요.
핏줄기가 꽃밭까지….
영진은 어느 날 버스 승차 과정에서 여학생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앞자리의 남학생에게 뻔뻔히 양보를 요구하는 중년 여자를 본다. 영진은 그 여자를 보고 경멸이 아닌 친밀감을 느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아름다움이며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 우리가 찾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