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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붉은 닻'을 읽고

by 제니아 Feb 03. 2025

'붉은 닻'을 읽고

    

‘아파서 쓴 것인지, 씀으로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프면서 썼다. 밤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새벽은 늘 여지없었다. 어둠의 여지 없음만큼이나 지독한 힘이었다.’

- 신춘문예 당선 소감

     

‘붉은 닻은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어서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앓아 온 형과 동생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 사라진 남편 대신 그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섬세한 문장 속에 깊이 박혀 잔잔한 긴장과 화해의 밝은 전망을 유발시킨다.’

- 신춘문예 심사평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 붉은 닻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김 평론가는 주소지를 보고 혹시 소설가 한승원의 아들이 아닐까 추측했었단다. 한승원 선생의 딸이 ’문학과 사회‘에 시로 등단하여 그가 시와 소설을 모두 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 한강은 한강현이라는 필명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었다.

     

남편은 물론 자녀 셋까지 온 가족이 작품을 쓴다고 방마다 밤새 불이 켜져 있다고 한승원 씨 부인이 신세 한탄을 했다는.

    

내용은 이렇다.     

한때는 번화했으나 사립학원이 부도난 뒤 상권이 몰락한 지역에서 문구점을 하는 동식의 가족이 있다.

동식은 폭음 폭연 등으로 간경변을 얻어 죽다 살아나 직장을 얻고 청약저축을 하며 행복한 꿈을 꾼다.

동식의 동생 동영. 입대 전 네 번의 대학 실패, 병영에서 막상 돌아온 동영은 변한 게 없이 말없이 어딘가를 걷고 헤매다 새벽녘에 돌아온다. 동영의 제대를 기다리는 어머니는 온 가족이 소풍을 가자고 해서 서해로 떠난다. 그곳에서 녹슬어 가는 붉은 닻을 본다. 동식은 동생에게 왜 변한 게 없냐고, 동영은 형에게 왜 아팠냐고 묻는다.

     

잔뜩 녹이 나서 붉은빛으로 보이는 닻은 상처받은 이 가족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하고 버려져 녹이 난 닻. 그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가족들의 삶, 가혹한 운명의 잔해들을 보여준다. 서로의 상처를 알고 보듬어주려 한다는 점.  

   

그것은 마치 수많은 목선이 이곳에 닻을 내렸다가 썩어가고 남은 풍경 같았다. 오랜 항해 끝에 돌아왔으나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하고 끝내 뭍에서 떠밀린 배들이 닻을 버려둔 채 망망대해 속으로 사라지고 난 흔적 같기도 했다.  

   

거대한 무덤 같았다. 선사 이전부터 내려오는 발자국들 같았으며 무수한 운명들의 잔해를 연상시켰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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