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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노노 10화

노노, 양식 수업

by 제니아

노노스쿨, 양식 수업


‘요리는 내가 배고파 가며 남에게 베푼다.’

요리사는 식사 시간에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행복을 나눈다’라는 모토로 운영되는 노노스쿨은 홀몸 어르신의 도시락을 마련해 배달하는 것을 주 활동으로 삼는다. 도시락은 한명숙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식 메뉴로 도시락을 꾸린다.

워커힐 호텔 총주방장이셨던, 양식 수업을 맡은 교장 선생님은 첫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노노에서 양식수업은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더 나아가 나의 지인을 위해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는 수업”이라는 말씀이다.


오늘 요리는 스테이크 한 종류와 달걀노른자로 소스를 만드는 샐러드 수업이다. 양식 요리를 정해진 시간에 그것도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건 쉽지 않다. ‘마리네이드’ ‘플람베’ ‘버터몽테’ ‘가니쉬’등 생소한 조리용어와 ‘데미그라스’ ‘식빵 크루통’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엔초비’ 등 재료의 용어가 생소하여 소분된 용기를 눈앞에 보고도 무엇을 첨가하는지 어렵다. 무엇보다 화구와 함께 하는 조리과정은 쫄고 타고 넘치기 일쑤인데다 다음 순서를 몰라 크게 당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가지 요리중 어느 공정을 먼저 미리 해야 할지 어려워한다. 분명 한 시간 전 선생님의 시연과 함께 이론 수업을 마쳤는데도 심히 헷갈리는 것이다.

다만 신기한 것은 담임선생님의 종료안내에 맞춰 완성된다는 것이다. 기구 다루는 것이 심히 서툴던 남학생 생도들도 이제는 같이 마쳐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릇장에서 선생님이 시연 때 세팅한 것과 같은 그릇으로 골라와 그대로 장식한다. 아스파라거스를 바닥에 깔고 취향껏 익힌 스테이크를 살짝 걸치고 감자와 브로콜리를 장식한 다음 버터몽테한 걸쭉한 소스를 얹는다. 그다음 노른자 소스에 ‘로메인 레터스‘를 버무려 접시에 담고 크루통과 베이컨 치즈가루등으로 장식한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어 남기고 나무쟁반에 받쳐 별실로 가 함께 식사 한다. 길고 긴 여정의 백미다.


노노에서 매번 새로운 수업때마다 드는 생각은 “은퇴했으니 이제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볼까?” 아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발현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다. 이런 “손수”의 신세계를 경험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양식 수업에서 배운 요리를 오마카세(?) 형식으로 조리대에서 준비하는 기분이라니. 미장 플러스된 요리재료와 양념들 그리고 조리기구들을 유념하여 복기해보고 그릇들을 구색에 맞게 구입해 볼까? 나의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의 담소는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연말에는 기필코 지인들을 초대하여 나의 숨은 실력을 뽐내며 자랑해야지.


여유롭고 너그러운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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