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된장, 그리고 고추장
장 된장, 그리고 고추장과 관련하여 오래 맘 먹은 일을 한식 수업에 해낼 생각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이모와 외숙모에게 배운 내 요리실력을 한명숙 원장님께 자랑할 심산이다.
그냥 말 수는 없으므로 곰삭은 작년 된장을 덜어내고 심혈을 기울여 두어 가지 찬을 마련하여, 그동안 수업에서 감사한 마음을 손편지로 쓴다. 노노스쿨 한식 담당이신 천하의 한명숙 선생님께 품평을 거친 후엔 검증된 요리가 되는 것이다.
‘23.된장’ ‘24.된장‘ ’25.된장’ ‘21.고추장’ ‘25.조선간장’ 이라 라벨을 붙인 그릇들은 널찍한 큰 사각 통에 담겨 선생님 앞에 놓여있다.
과연 선생님은 <얼가리배추된장국> 시간에 연도별로 구분해 담아간 내 된장을 소개하시며 조선간장과 함께 설명하신다. 이런 귀한 된장을 선물 받으면 한꺼번에 먹지 말고 시중 된장과 섞어 사용할 것을 권하신다.
“광대승천”
내가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만족하는 단순함이지만 오늘같은 행운도 한 몫 한다.
내가 장 된장을 담게 된 건 얼추 스무 해가 돼간다. 우리 농에서 메주를 두 말 분량을 사 온다. 대략 열 덩이 정도인데 이 분량은 내가 가진 항아리에 장과 된장을 띄우기에 적당한 분량이다. 매년 정월 첫 번째 말(午)날에 외숙모를 모셔다가 일일이 감수를 받아 메주를 담근다. 옻나무를 끓여낸 물을 식혀 소금농도를 맞춘다. 정확히 40일 이후에 장 된장을 가른다. 이날은 생콩도 삶아 메줏가루와 함께 된장에 섞어서 갈라야 하고 장도 작년 집간장을 섞어 다시 끓여야 해서 일이 훨씬 많아 고생스럽지만, 실질적으로 생산물이 생기는 날이라서 좋다. 물론 이날도 외숙모를 모셔오고 모셔다드린다. 먹거리로 선물도 준비한다. 남은 건 날마다 햇빛을 잘 받도록 뚜껑을 여닫아 그대로 삭히면 곰삭은 노오란 된장이 된다. 선생님께도 1년 삭힌 작년 된장을 새로 덜어내 품평해주시라고 부탁할 때 선물한 것이다.
물론 그전에 담아둔 색깔이 거무스름한 된장은 선물용으로 쓴다. 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알맞게 익으면 나는 이 된장을 우리 집 방문객이나, 모임 때 적당한 이 그리고 특별히 청하는 이에게 덜어내 준다. 한결같이 어릴 적 엄마 맛이라고 좋아한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마지막에 마늘만 조금 넣으면 그만인 우리 집 된장은 누구나 환영하고 고추를 찍어 먹는 맨 된장으로 별도로 원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재료 같은 방법으로도 다른 맛을 내는 재주. 모두는 나를 그렇게 말한다. 물론 나는 주로 자랑을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우리 엄마의 외갓집 어른이 궁중 수라간 나인 출신이었더라는 얘기도 물론“
“이모와 외숙모의 음식솜씨는 감탄의 수준이라는 것도 물론”
사지선다에 코 박고를 무사히 마친 여름 나절.
유리창 너머 여름비가 내린다.
열어 둔 장독대를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