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지기와 별장 가진 친구를 둔 이
수업이 내리 4시까지 이어진 오늘은 유난히 피곤함을 느낀다. 중간에 특급으로 갈아타지 않고 일반열차로 죽 계속해서 환승역까지 간다. 컨디션이 좋아 중간에 특급으로 갈아타고 환승 두 번을 감수한다면 30분 정도 일찍 도착할 수도 있겠으나….
모르긴 하나 환승역 몇 정거장 못미처 친구에게 연락하면 그는 어쩌면 환승역으로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전 멀리 이사를 했다. 이 환승역을 고집하는 건 어쩌면 아쉬움을 곱씹으며 그 감정에 취하고픈 심정일 거다.
아쉬움을 달래볼까. 그니를 만나러 하룻밤 자고 오기로 한다.
어제부터 부엌에서 시나브로 준비하는 몸놀림에도 그이는 별 반응이 없다.
친구네 가는 길에 정성껏 반찬을 준비하는 낌새에도 물론 아는 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일하게 변함없이 가는 길에 동행해준다.
친구가 조금 멀리 이사를 했고 나는 서운함 반 궁금함 반.
그래서 한시 반시 가봐야 해서 꾸러미를 꾸리는 것이다.
어제 목포 생선 나라에서 산채로 공수한 전복을 큼지막이 썰어 넣고 끓여낸 전복죽. 무 굵게 썰어 넣어 익힌 병어를 양념장에 쪄내고 노노 한식 수업에 배운 콩나물 명란 순두부도 냉국으로 준비한다.
새우젓을 덜어내 가지를 쪄내어 양념하고 호박도 새우젓으로 간하여 올리브 오일에 볶아낸다. 보름 전 마트에서 50개들이 오이를 장아찌 담아 알맞게 삭힌걸 예닐곱 개 썰어 무친다.
곰삭은 열무김치, 그녀의 채마밭에서 갓 따낸 풋고추는 노랗게 발효된 우리 집 된장 하나면 금상첨화이다. 작년 매실청을 한 병 담아가서 얼음물에 더위를 식히자.
재건축기간이라는 전제하에 한시적 별장살이이지만 시골살이의 기분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친구의 이사는 본인은 이러구러 말이 많지만 나는 졸지에 별장 가진 친구를 두게 된 것이다. 과연 이튿날 동이 트자 고샅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텃밭털이에 나섰다.
우선 장마 전 수확해둔 감자 한 상자를 챙기더니 오이고추 청양고추 꽈리고추를 종류별로 따 담는다. 장마철 막걸리를 위해 수북이 자란 부추를 캐 담고 갈아서 즙을 내 먹기도 아깝다며 씨알이 적당한 당근을 한 줌 캐낸다. 된장국 재료로 연한 아욱과 어린 깻잎을 하염없이 따내서 내 특기인 깻잎찜을 해보란다. 상치 쑥갓도 여기에 덤이다. 곧바로 우리 차 트렁크 행이다. 나는 이것을 요소요소에 잘 나눌 것이다.
야생화로 잘 어우러진 잔디마당, 온갖 푸성귀로 잘 가꿔진 채마밭. 현대 직원이 손수 지었다는 별장식 집.
거기에 안주인 주변을 서성이며 계속해서 뭔가를 챙기고 있는 바깥주인의 진심은 내심 대접받는 느낌으로 기분이 좋다.
난 행복한 하룻밤을 지내고, 언제일지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이래서 나의 환승역은 아쉬움이고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