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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감정을 감각으로 번역하기

by 제니아

차정윤 -제4강, 감각 자극 글쓰기

늘 그렇지만

또 이렇게 네 안부만을 묻는다.

잘살고 있느냐고….

더 이상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 없기에….

늘 그렇지만

하늘 높은 가을 어느 날엔가

가지런한 전나무 가로수길을 나란히 걷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속에 묻어야 한다.

내가 네게 부담스러운 존재이고 싶지 않은 꼭 지키고 싶은 내 작은 자존심 때문에….


조회 수가 두드러진 익명 글을 다음 카페에서 발견하고서 어쩌면 ‘나일까’하는 생각을 한 건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닮아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바람끝이 제법 차가워져 가로수길에 은행잎이 지천이고 찬 바람이 쌩 하고 소매 끝을 파고들면 본격적으로 출퇴근이 어려워지는 계절이 왔다.

초임 첫 사무실에서 퇴근 후 두 시간쯤 뒤에야 도착하는 집에 가는 버스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서야 돌아오는 하루 한 번 있는 군내버스이다. 출발지 종점에서부터 직장인과 학생이 차례로 타고 소도시들을 거쳐오면 내가 타는 도시의 정류장에선 차곡차곡 저절로 쟁여지는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가 된다. 아침에 나갈 때도 반대로 종점에서부터 학교에 가고 직장가고 오일시장에 가는 인파로 늘 발뒤꿈치를 땅에 두지 못했었다. 더구나 매일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리는 정류장은 야외 노출된 공간이어서 늘 날씨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과 눈보라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친해져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름 추억이 있는 게 그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모두가 얼마쯤 아는 지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친구이고 몇 회 동창, 뉘 집 여동생, 아랫동네 오빠…. 그들은 버스에 오르며 눈인사를 나누고 누군가는 조용히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서로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할 정도는 되어갔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면 보이지 않게 되고 취직시험 준비생이 직장을 얻으면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살짝 궁금해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건 불문율이었다.


아주 먼 훗날, 서울의 큰 학교 초록 운동장을 대여해 총 동창회를 하게 됐을 때 실로 오랜 시간을 살다 우연히 만나 그리웠던 그 버스 이야기를 추억담으로 하게 되리라는 건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지런한 전나무 가로수길은 부안 내소사가 으뜸이다. 템플스테이에 갔었고, 해안가 드라이브 뒤에 갔었고 남도 여행길에 또 갔었다. 그곳을 누군가와 나란히 걷고 싶다는 생각은, 글쎄다.

그 후로도 글의 조회 수는 늘어만 가고 세월은 또 흘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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