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스쿨, 일본 졸업여행을 다녀와
새벽 전례라면 네 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다섯 시가 조금 지나 집을 나선다.
오늘 또한 새벽 여섯 시가 되기 전 공항버스를 타야 해서 거의 같은 행동이다. 정류장 앞에 내려주어 어려움은 없었으나, 예보와 달리 새벽바람이 차다.
공항버스 1602번이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하니 동료 몇이 눈에 띈다. 7시 40분에 만나기로 한 3층 출국장 동편 1번 출입구에서는 우리 멤버 특유의 성실한 일면이 드러난다. 가이드가 나타나기 전인데도 우리는 이미 출석 완료 상태다.
생각보다 여행객이 많지 않아 수월하게 짐을 부치고 출국 절차를 밟은 다음, 출국장 근처 소파에서 우리의 막간 레이스는 시작된다. 유쾌하게,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행보를 맞춰 본다.
한 가지 서운한 점이 있었다. 우리끼리 단독 여행을 꿈꾸며 한껏 오붓함을 기대했으나, 도착해 보니 우리는 제1조가 되어 있었다. 비록 두 명씩이긴 했으나 2조와 3조의 존재는 우리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아무도 이 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열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각,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 절차를 밟는다. 내가 국내 여행을 고집하는 건 바로 이 출입국 절차 때문이다. 하필 나는 비행기 맨 뒷자리이기도 했고, 입국장 줄에 설 때도 나름 한껏 골라 섰으나 마침 담당자 업무 교대가 내 앞에서 이루어지는 바람에 일행보다 늦어졌다. 마음이 조급했으나, 내 짐은 다행히 동료가 찾아 둔 상황이었다.
공항에서 출발해 점심을 위해 돈멘 집으로 향하는 길, 가이드는 편의점에 차를 대더니 물부터 사 두라고 했다. 호텔에서도 물을 한 병만 줄 것이니, 부족하면 호텔 수돗물을 마셔도 무방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발언은 어쩐지 이번 여행의 첫인상이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과연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첫 차에 오르기 전 물 한 병 정도는 기대했으나 그런 성의는 끝내 없었다.
점심으로 돈멘을 먹고 야나가와로 이동해 뱃놀이를 했다. 주택가를 통과하는, 조금 좁다란 물길이었다. 오늘의 멤버 22명이 살짝 붙어 앉을 만큼 촘촘한 작은 거룻배 한 척에 모두 올라탔다. 30여 분 동안 대나무 막대를 쥔 사공은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다. 기분이 좋은지 연신 들뜬 모습이었고,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듯한 미성의 목소리는 물길 위로 길게 이어졌다. 마지막 곡은 ‘이 나이가 어때서’. 그 노래가 끝날 즈음 우리가 내릴 곳에 다다랐다.
첫째 날 숙소인 구마모토의 〈츠에타테 관광호텔 히젠야〉에 짐을 풀고 노천탕을 들른 후, 시내 식당으로 가 카이세키 저녁을 먹었다. 소주가 무제한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한 병에 한해서였고, 소주가 부족하다고 하자 가이드의 특전인 양 한 병이 더 나왔다. 그래도 커다란 세미나식 방에 둘러앉아 먹는 저녁은 오붓한 첫날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인터넷에서 본 가이세키는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훌륭해 보여서 조금 아쉬웠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 돌아와 옆방에 멤버들이 모였다. 이야기의 향연이 시작됐다. 모두가 유쾌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이었다. 오래도록 이야기는 이어졌다. 늦은 시간 방으로 돌아와 다시 방짝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선대의 삶의 철학을 이어받아 우리 자식 세대에게 넘기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그 친구가 더 좋아졌다. 서로의 덕담이 오가고, 우리는 분명 잘 살아내고 있다는 데 공감하며 의기투합했다.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으로, 그날 밤은 기분 좋게 내리 잤다.
이튿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 둘이서 온천탕에 들렀다가 한식의 호텔 조식을 잘 먹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주변의 경치에 점점 동화되어 갔다. 산책 도중 “이제야 말할 수 있다”의 선생님 말씀에서, 남편과 나란히 써낸 내 지원서가 한동안 심사숙고의 대상이 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숙소와 그리고 그 주변 경관에 우리 모두는 만족해 했고 둘째날의 특별하지 않은 일정을 소화했다. 참, 작은 호수에 갔었고 관광지로 조성된 상점가를 걸었고 그리고 낮 비가 조금 내렸었다.
둘째 날 숙소 또한 시내야경이 좋은〈힐튼 후쿠오카 씨 호크>호텔의 25층에서 묵게 되었다. 1인당 천 엔씩 제공된 저녁값으로 모두 모여 함께 하기로 했다. 짐을 풀고 호텔 로비에서 7시 15분에 다시 만나, 20분쯤 걸어 술을 마실 수 있는 2층 주점으로 갔다.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동기의 도움으로 주문도 수월했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바깥 날씨는 바람이 세차고, 춥지는 않았다. 비가 조금 흩뿌리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동선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저녁 후 일부는 호텔로 들어오고, 일부는 쇼핑을 가고, 일부는 2차를 가는 등 각자 과정을 마친 뒤 야심한 시각 다시 헤쳐 모여 했다. 취기어린 담소가 이어졌다.
3일째 아침에도 어젯밤처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침 조식 후 모모치 해변을 다녀와, 학문의 신을 모시는 다자이후 신사에서 신사참배를 생각한 건 신사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해서였다.이어 일식 정식으로 점심을 먹은 뒤 도착한, 신사앞 거리의〈다자이후 신사 스타벅스>는 명소라고 했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차를 한 잔씩 하기로 했다. 현 교장님이 나에게 챙겨 주신 졸업 기념 교환권을 그 자리에서 쾌척한 것이다. 스물두 명의 멤버가 모두 한 잔씩 마시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기분좋은 시간이었고, 시의적절한 선물이었다.
그 후 하카타역 주변에서 주변 즐기기를 한 후, 공항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값으로 천 엔씩 지급된 금액과 한 멤버가 나머지 금액을 보태 준 덕분에 〈후쿠오카 초밥 맛집〉에서 저녁을 배불리 먹을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 생각하는 건 여행중 두 번씩이나 1천엔씩 현금으로 지급하고 식사를 각자 책임지게 하는 건 여행의 질을 담보하는 것이고 총액으로 비교되는 여행경비로도 서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뭏튼 후쿠오카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출국 수속을 마친후 밤 10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이 늦게 나와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이는 조급한 마음이었으나, 남편이 공항에 나와 주어 편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늦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 피곤하지 않다. 발이 불편해 곤란을 겪긴 했으나 내색하지 않을 만큼이었고, 능력 있고 재바른 동료들 덕분에 전체적으로 순조롭고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제는 정말 마무리를 해야 하는 시간. 아홉 달의 노노스쿨 여정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동시에, 새로 시작하는 프렌즈에서도 지금처럼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