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 100km를 달린 이유

by 임지원

러닝 후엔 무조건 러닝 머신 LCD창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기록을 정리해 둔다.

지난주 내 러닝 기록을 정리해 보니, 월요일 6km, 화요일 4.05km, 수요일 4.64km, 목요일 4.50km, 금요일 6km. 다 합치니 20킬로가 넘는다. 하루 평균 5km, 러닝을 시작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4km 이상을 달린 셈이다. 초보 러너인 나에게는 꽤 성실한 기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가 말하는 '착실하게 달린다'의 의미는 하루에 10km, 일주일에 60km를 달리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게다가 그의 달리기는 러닝머신 위가 아닌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의 달리기를 흠모하긴 했지만, 기록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러닝이라는 것을 해보니, 조금은 느낌이 온다. 그의 달리기가 얼마나 투쟁적인지 알 거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헬스장 러닝 머신 위에서 뱅뱅 돌아가는 벨트의 조력을 받아 달리는 것도 일단 달리고 나면 내 몸에 찾아오는 상쾌함과 뿌듯함이 어마어마하다.

그건 중독이 될 만큼 짜릿한 것이라 누구라도 한 번 그 기분을 맛보고 나면 계속 달리게 될 것이다. 달리지 않는 순간에도 달리는 생각을 할 정도다. 자연스럽게 내일의 러닝을 위해 피로가 쌓이지 않게 몸의 컨디션을 돌보고, 관절 건강을 위해 다리도 꼬지 않는다. 골다공증 예방을 위한 칼슘과 비타민D섭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떤 날이었는데, 평소보다 너무 잘 뛰어지는 거다. 왜 이렇게 몸이 가볍고 다리와 발목의 움직임이 편안했을까?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와 체중을 확인하니, 오랜만에 1kg 정도 감량이 이루어진 것이다.

적정한 체중이 유지돼야 러닝을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요리방법과 음식 섭취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빵을 줄였다는 것이다. 아침에 빵 안 먹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했었는데, 요즘은 찐 단호박과 저지방 우유로 아침 식사를 바꿨다. 빵보다 러닝이 주는 기쁨이 더 짜릿하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나쁠 게 없는 선택이다. 덕분에 과체중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중이며, 언젠가 살 빼고 입어야지 하며 사둔 옷들을 이제 입어보고 있다. 왜 맞지도 않는 옷을 사냐고요? 우리 옷장에 그렇게 사둔 옷들 한 두벌쯤 다 갖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문득 내 몸 돌보기에 열과 성을 다하는 내가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으니, 무슨 일인가?

내 주변의 모든 미디어가 몸을 돌보라고 말한다. 유튜브도 아침 방송도, 포털의 건강 관련 기사들도!

그런 일관된 사회적 메시지에 충실하려는 듯한 내 모습이 왠지 너무 순응적이고,

매력 없게 느껴진다. 답답한 마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는 같은 책('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하루 100km를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린 적이 있다고 했다. 보통의 건전하고 상식적인 사람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하긴 그가 군살이나 좀 빼고, 건강한 노후와 요양 비용 지출을 최소화를 위해 그렇게 비상식적인 달리기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무리한 달리기로 그가 다치기라도 하면 더 큰 사회적 손실이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달린 이유는 일종의 일탈행위인데,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일탈 행위는 어떤 종류의 특별한 인식을 당신의 인식에 반영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특별한 인식을 갖기 위해 그토록 가혹한 달리기를 한 것이다. 책에서는 그는 그 가혹한 레이스를 마친 후 십 년 전에 써둔 어떤 원고를 다시 집어 들었던 모양이다. 문학적 돌파구를 찾기 위한 그의 몸부림이 바로 100km 달리기였던 거다. 그의 러닝은 러닝 그 자체로 상쾌하고 뿌듯한 건 아니었나 보다. 물론 뛰다 보면 가끔 그런 날도 있었겠지만.

가끔 그가 달릴 때 듣는 음악을 들으며 나도 달렸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달리는 거 같아, 기분이 우쭐했던 적이 있다. 나 너무 바보 같다. 비교적 성실했던 지난주 러닝 기록을 정리하며 왠지 모를 슬럼프에 빠진다. 시끄럽게 꽥꽥하고 싶다가도 러닝을 하고 나면, 상쾌하고 뿌듯했는데, 그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

부조리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종종 나를 엄습하는데, 그 순간 나는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허벅지 근육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나는 현직이 없는 그냥 아줌마고, 이런 내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진다.



어제 서울 중구 어디쯤에 있는 작은 만둣집에 두 딸과 남편까지 함께 들어갔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두 명씩 짝지어 좁은 공간에 앉아 만두를 먹고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주고 있었다. 주문한 남편의 냉면에 대해 너무 맵지 않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려는데 나를 보는 할머니 눈빛이 너무 차가워 깜짝 놀랐다.

가능하면 반영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잠시 후, 우리 가족 등뒤에 젊은 외국인 여행객 두 명의 주문을 받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일이야? 짧은 영어문장에, 나긋나긋,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저렇게 친절하신데, 엄마한텐 왜 그러시지?"

"엄마 '바비'에 나오잖아, 여자도 여자 싫어하고, 남자도 여자 싫어한데, 그게 공통점."

"그런 대사가 있었어? 하긴 요즘 누가 아줌마를 좋아해..."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결국 영화 '바비'를 본 큰 애와 만두를 먹으며 잠깐 수다를 떨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데미안이 말한 자신의 그 알을 깨기 위해 하루 100km를 달렸다.

그는 결국 알을 깼고, 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어떤 심정으로 100km를 달렸을까?

나는 지금 아줌마고, 현재 직업도 전문 분야도 없다. 갑자기 문학적 소양이 폭발할 리도 없고,

이런 나는 앞으로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할까? 하루키처럼 100km를 달리면 답을 알게 될까?

하루 100km... 불가능하다. 그 답은 영원히 묘연하겠다. 호르몬 탓일까? 오늘은 좀 우울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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