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은 매직이다.

당신이 당장 달려야 할 이유

by 임지원

월요일 아침이다. 아직 새벽인 듯 어스름이 남아 있는데, 알람이 울린다. 계절이 변하고 있나? 하긴 8월 말이다. 이제 가을이 기지개를 켤 만도 하다. 밤 사이 급격한 노화가 진행된 건가? 너무 무겁고, 뻣뻣한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마지막 러닝이 언제였나? 기억도 안 난다. 어젯밤엔 야식도 먹었다. 큰 애를 대학교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밤 12시, 이른 저녁을 먹은 터라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뭐든 먹으면 반드시 후회할 시간이지만, 지난 한 주, 너무너무 힘들었던 몇 번의 답답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 그냥 먹자!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며 최근 유명 여자 연예인의 추천으로 이름이 알려진 시나몬 토스트 크런치 시리얼 한 그릇을 우유에 말았다. 서걱서걱 씹히는 시리얼과 시원한 우유가 입 안에서 만나 파티를 벌인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우유를 조금 더 따른 뒤, 시리얼도 추가해 한번 더 파티를 즐겼다. 우유는 저지방이었지만, 시리얼은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달았다. 설탕을 퍼먹은 후 잠이 들었으니, 몸이 이런 건가? 싶다가도, 그냥 나이 탓 같아 조금 슬펐다. 앞으로 얼마나 달릴 수 있나? 운동일지를 계속 쓸 수 있을까? 휴대폰 속 사진앨범의 러닝 기록을 찾아보니, 8월 21일 오후에 뛴 6km가 마지막이다. 어떻게든 짬을 냈다면 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정은 있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냥 다 변명일 뿐이다. 어차피 망친 시간들은 잊고, 오늘만큼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무조건 헬스장부터 가서 러닝 머신 위에 서리라 마음먹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 월요일은 재활용 수거일이지만, 그것들은 그냥 집에 묵혀두면 되는 일이고, 아침 설거지도 일단 뛰고 나서 해도 아무 일 없다. 막내를 학교에 보낸 다음 가벼운 운동복을 챙겨 입고, 양말과 얼음물, 휴대폰과 에어팟을 챙겼다.


헬스장에 들어서니, 창문이 다 열려있고, 에어컨도 꺼져 있다. 빗소리와 제법 서늘한 바람이 가득하다. 이렇게 헬스장의 계절이 바뀌는 모양이다. 에어컨 바람이 아닌 진짜 바람을 느끼며 달릴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러닝 전 하체 운동을 조금 하려고 헬스 기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니 수십 개의 아령이 진열된 장소의 놓인 벤치에 누군가 누워있다. 왠지 익숙한 느낌에 조금 더 다가가니 나의 육아동지에서 운동동지가 된 그녀다! 반가운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 살짝 알은체를 하니, 그녀가 깜짝 놀라며 나를 본다. 대화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우린 깔깔깔 웃기부터 한다. 그녀는 주말에 가족과 산책을 다녀온 이야기와 헬스장에서 어떤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언니, 나 운동 끝나고 다리 벨트 마사지를 한참 한 거야, 나 그거 오래 하는 거 알지?"

"알지! 알지!"

"근데, 뒤에서 어떤 할머니가 날 계속 보고 계신 거야,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내 다리가 통토오오옹 하대! 근데, 날 바라보시는 할머니 눈을 보니까...

그 마음이 뭔지 너무 알겠는 거야."

"아... 그러게. 나도 알 거 같다."

"... 그러니까... 근데, 통토오오옹은 너무 웃겨."


우리는 통토오오옹을 여러 번 말하며 웃었다. 웃고 나니 몸과 마음이 릴랙스 되는 기분이 든다. 하체 운동 몇 가지를 하고 바로 러닝 머신으로 올라가 5.8, 나의 최적의 걷기 운동 속도로 세팅하고 걸었다. 내 오른쪽엔 독서를 하며 자전거를 돌리는 헬스장의 고수가 달렸다가 걸었다가를 이미 반복하고 있었고, 잠시 후 내 왼쪽에 자리를 잡은 나의 운동동지 그녀는 0.5kg 아령까지 들고 조금 빠른 속도를 걷다가 드디어 뛴다!

나도 500m 정도 걷다가 몸이 허락하는 거 같아, 속도를 8.7로 올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내 심장 박동과 합을 맞춘 듯 들려오는 음악과 내 발이 계속 달리도록 돌아가는 러닝 머신의 벨트가 '달리는 나'를 만들어주고 있다. 무생물의 그것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겨서 웃음이 나왔다. 달린 거리가 2km 지점을 지나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양쪽 러닝 머신에서 함께 달리는 동지가 있어 더 힘이 났다. 아령까지 들고 달리는 나의 육아 동지 그녀를 보니, 너무 뿌듯하다. 그녀는 내 운동일지를 읽고 함께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다섯 달 정도 됐는데, 살도 많이 빠지고, 무엇보다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입시를 앞둔 아들에게 잔소리가 하고 싶어지면, 입을 꾹 다물고 헬스장으로 내려온단다. 그녀가 자주 하는 말,


"언니, 나 운동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4km라도 뛰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뛰다 보니 어느새 5km에 도달했다. 아직 양쪽엔 나의 동지들이

여전히 달리고 있고, 마침 시작된 음악이 HOT의 'Candy'라 마음이 경쾌해져 좀 더 달렸다.

그렇게 6km를 채우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때 마침내 몸으로 다가온 초가을 서늘한 바람에서 궁극의 시원함을 느꼈다. 이 정도면 괜찮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년이 되면서 부족한 나, 평범한 나를 인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최근에 본 영화 '바비' 후반부에 주인공이 의사 바비, 판사 바비, 대통령 바비도 좋지만

그냥 평범한 바비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주제가 드러난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들어간다. 내가 멋진 엄마, 대단한 아내, 좋은 인간이 아닌 거 같은 기분이 종종 나를 장악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모인 식탁엔 웃음꽃도 피지만, 종종 서로에게 상처와 실망을 안겨준다. 십 년 뒤에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를 일에 대한 근심, 걱정까지 내 뺨을 후려친다. 제대로 맞으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건 헬스장 이쪽 창에서 들어와 저쪽 창으로 나가는 바람에 실어 보내버리면 된다. 일단 달리면 좋은 인간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내일도 일찍 와서 달려야지! 달릴 수 있으면 아무 이유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러닝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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