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의 사소한 연대의식에 대해
가족이 모두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 월요일 아침이다.
지난 주말, 기숙사에 있던 아이가 집에 오는 바람에 오랜만에 열심히 밥을 차렸다. 밥을 먹는 가족의 수가 항상 넷일 땐 몰랐는데, 셋으로 줄고 그마저 남편은 저녁까지 밖에서 먹는 날이 많아지니 밥 차리는 부담이 줄어든다. 늘 식재료로 꽉 차 있던 냉장고에 여유공간도 생기는 요즘인데, 이 자연스러운 상황을 난 예측 못 했다. 오랜만에 넷, 가족이 모두 함께 밥을 먹는 주말이 왠지 페스티벌처럼 느껴졌다. 미리 장을 봐 냉장고를 꽉꽉 채워두고 준비를 했는데 2주 만에 집에 온 아이는 공부를 하느라 힘든 건지,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 건지 예전만큼 신나게 먹질 않는다. 같은 목표를 갖고 공부를 하는 집단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경쟁도 힘들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고단한 모양이다. 젊음은 한 때이고, 참 귀하고 좋은 거다. 이 말에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그 젊음 속에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모호한 불안함도 존재한다. 속이 타는 모양이다. 아이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있다.
"난 지금이 좋아! 젊었을 땐 알 수 없는 미래, 그런 게 너무 싫었어! 그래서 난 지금이 좋아!"
삼십 대 중반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내 또래 중년의 그녀가 한 말이다.
그런 면도 없지 않다. 나 역시 모든 것이 불안했던 이십 대를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낫다'의 의미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니까... 갑자기 상금 같은 돈과 여유가 생겨 아주 먼, 미지의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날 기회가 생긴다 해도 그냥 다 제쳐두고 떠날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생긴 거다. 좋은 걸, 내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힘들어도,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힘든데, 왜 마음이 편할까? 도대체 왜? 모르겠다. 엄마가 되면, 그런 이상한 상태가 된다. 그럴 필요 없다고, 엄마도 엄마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운동복을 챙겨 입고 '나의 러닝머신'이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사실 재활용품을 내다 놓느라 평소보다 더 많이 몸을 움직인 아침이었다. 그냥 냅다 드러누워 한두 시간 정도 게으름을 부려도 되는데, 문득 집을 나간 가족이 각자의 위치에서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나도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이런 내가 그렇게 맘에 들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난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항상 뭐든 잘하려고 애쓰는 아이였다. 그렇다고 늘 잘하면서 산 건 아니지만, 마음은 바빴다. 중년이 됐는데도 아직 그 마음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그럴 필요 없다.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신발장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신발끈을 꽉 조인다.
어떤 러닝 머신이 비어있는지 살핀다. 아직 오전이지만, 평소보다는 좀 늦은 시간이었는데, 나의 육아동지에서 운동 동지가 된 그녀가 벌써 한참 뛰었는지 온 얼굴이 땀범벅이 돼 달리고 있다. 다정한 눈인사를 나누고 늘 비슷한 내용이지만 또 새롭게 서로의 일상에 대해 가벼운 대화에 나눈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드디어 걷는다. 윙윙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가 익숙하다. 누군가 열어둔 창문에서 간간이 바람이
불어온다. 에어컨은 꺼져있어 조금 더운 느낌도 있었지만, 오히려 땀 흘리기엔 좋은 이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잠시 후, 내 왼쪽에 있는 운동 동지가 러닝 머신을 멈춘다.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러닝의 희열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내가 좀 일찍 왔다면 더 오래 함께 달렸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 전 신기한, 아니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이곳 헬스장에 있는 총 다섯 대의 러닝 머신 위에
조금씩 익숙한 중년의 그녀들이 다 함께 서서 운동 열정을 폭발한 것이다. 그날 오른쪽 끝 러닝 머신에 있던 그녀는 내 생각에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을 살짝 닮았다. 물론 그녀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모르고, 어쩌면 싫어할 수도 있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그녀 역시 운동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걷는 모습만 봤는데, 몇 달 전부터 조금씩 뛰다가 지금은 거의 달리는 중이다. 나와 같은 동에 거주하기 때문에 가끔 그녀와 마주친다. 여섯 살 정도 된 딸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도 본다. 스칼렛 요한슨 닮았다고 말해줄까? 싫어할까? 당황할까? 나 혼자 속으로만 몇 번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의 운동 동지 그녀는 그날, 내 오른쪽에서 달렸다. 그리고 나. 다음 내 왼쪽은 실내자전거를 돌리며 책을 읽는 우리 헬스장 운동 고수 그녀였다. 러닝 머신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하는 것이 왠지 자연스럽지 않은데, 어느 날 딱 한번 그녀와 인사를 나눴다. 내가 러닝 머신에 올라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그녀가 내 오른쪽 러닝 머신에 딱 올라온 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냥 엘리베이터 안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해볼까? 딱 생각한 순간 나는 벌써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고수신 거 같아요!"
무표정한 얼굴로 자전거를 돌리던 그녀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에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녀도 그랬을까? 그리고 왼쪽 마지막 러닝 머신 위엔 우리 막내와 어렸을 적 친구의 엄마. 이 엄마, 진짜 열정 넘친다. 그녀도 나처럼 딸이 둘이다. 올해 큰 아이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학교는 우리 동네에서 꽤 먼 곳에 위치해 있다. 딸의 등하교 수발을 하느라 그녀는 지금 엄청 바쁘다. 새벽에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시간에 운동까지 하러 온 것이다. 그녀는 달리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걸었다. 체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걸까? 어쨌든 고등학교에 입학한 순간, 대학 입시를 생각할 테니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마음속 깊이 그녀를 응원했다. 그날 그렇게 총 다섯 명의 아줌마가 러닝 머신 위에서 딱 만난 것이다. 그렇다고 동시에
"우리는 건강한 아줌마예요!" 구호를 외치거나, 어떤 특이한 손동작 같은 걸 하며 우리가 한 팀임을 선포하진 않았지만, 나는 왠지 연대감 같은 걸 느꼈다. 우리가 과거 어떤 일을 했든 간에, 지금은 엄마, 주부,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만약 우리가 다 같이 카페에서 만난다면, 거침없는 대화가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젊음이 그립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젊음이 좋아도 모든 게 결정된 지금이 낫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그 좋던 젊은 시절에 홀가분하게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가본 게 아쉽다고도 하겠지...
우리가 소녀시대처럼 멋진 안무를 소화하며 노래까지 부른 건 아니지만, 나름 아줌마 다섯 명이 러닝 머신 위에서 열정 넘치게 걷고, 달리는 모습은 나름 장관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 달린 러닝 기록에 비해 더 좋은 기록을 쉽게 얻은 느낌이 분명 있었다. 같이 달려야 쉽게 달릴 수 있다.
오늘은 나의 운동동지가 내 곁을 떠난 후(왜 이렇게 애절하지?), 그 자리에 노인 한 분이 올라와 잠시 걷고 내려가셨다. 전에도 뵀던 분이다. 그리고 잠시 후 20대, 어쩌면 30대일 지도 모를 남자 한 분이 갑자기 나타나 엄청 빠른 속도로 달렸다. 강철 무릎이 펼치는 현란한 러닝에 경외심이 생겨났다. 가히 '질주'라 부를 만했다. 나는 무릎 관절을 모시고 달리는 입장이라 부러움을 느꼈다. 그는 오래 달리진 않고, 폭발적으로 달리다가 금방 속도를 늦추고 러닝 머신에서 내려갔다. 내 오른쪽 옆에서 걷는 그녀는 같은 속도로 계속 걷고 있다. 나는 5km를 달리고 멈춤 버튼을 눌렀다. 4km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오히려 5km까지 달리는 건 평온해서 신기했다. 생각을 좀 더 해보면, 뭐든 시작하고 초반에 힘든 게 당연하다. 우리 헬스장 창문 앞에는 총 다섯 대의 러닝 머신이 놓여 있다. 다양한 연령의 많은 사람들이 이 러닝 머신 위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걷고, 달린다. 헬스장 천정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하고 그 모습을 빠른 속도로 본다면 재밌을 거 같다. 다섯 대의 러닝 머신이 전부 비어있을 때도 있고, 꽉 차서 바쁘게 돌아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 풍경은 비슷하고 조금씩 다르다. 그러던 중 어떤 날, 아줌마 다섯 명이 동시에 러닝 머신 위에서 만나 즐겁게 달린다. 그것은 마치 우주에서 지구와 달과 해가 동시에 일렬로 서는 것처럼 극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