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줌마, 명절증후군 극복기
어머님은 이번 명절엔 전을 조금만 부쳐도 될 거 같다고 하셨다.
그 순간 옆에 서 계시던 아버님이 어머님 어깨를 툭 치신다. 왜 굳이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눈치를 주신다.
어머님은 시누이 둘이 명절에 여행과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하시며 음식을 챙겨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반면 아버님은 어차피 명절인데, 음식은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어쩌면...
며느리의 책임을 굳이 덜어줄 필요는 없으니, 할 일이 있을 때 제대로 하게 놔두라고 하시는 듯 느껴졌다.
그 순간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왔다.
주일 예배가 끝나면 아버님 어머님, 막내 시누이까지 함께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아버님은 딸에겐 흡족한 강아지 같은 표정을, 며느리에겐 왠지... 선 긋는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으신다.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서운한 적도 있지만 내가 딸 둘을 키워보니 아버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고,
여행도 병원도 딸들과 더 많이 다니시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과거 명절증후군의 어두운 기억 때문인지 명절을 준비하며 보낸 며칠 동안 내 마음이 하루 지난 가래떡처럼 꼿꼿해졌다.
그래도 화요일엔 요가강습이 있어 마음 좀 말랑말랑해졌다.
원래 나는 수요일 금요일반인데, 강사님의 긴 연휴에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어 화요일 수업에 합류했다.
덕분에 수금반 회원과 화목반 회원이 모두 만났다. 60대 이상의 언니가 세분, 그리고 50대의 나, 40대의 그녀까지 함께 수련을 했다. 긴 연휴로 열흘 가까이 요가 강습이 비게 된 터라 강사님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동작 두 가지, 비라바드라 A와 비라바드라 B를 알려주셨다. 이건 아쉬탕가 요가를 할 때 하는 동작이다.
비라바드라 A는 하늘을 향해 합장한 손을 올리며 숨을 들이마시는 동작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고관절을 접어 바닥으로, 고개 들며 호흡 한번 들이마시고, 손가락을 활짝 펴 바닥에 놓고 두 발을 뒤로 뻗는다. 그리고 팔을 접어 몸을 바닥까지 하강시킨다. 몸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바닥에 놓인 몸의 상체만 들어 올리며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활짝 열었다가
다시 내려와 일명 다운독 자세. 내 몸을 산처럼 세운다. 그 산의 정상은 엉덩이. 그 상태로 호흡을 다섯 번하고 매트 끝에 놓인 두 발이 종종걸음으로 매트 앞까지 걸어오면, 이번엔 상체를 들어 올린다. 천천히 시선은
배꼽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다시 합장한 손을 하늘로 올리며 호흡하고. 그 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오며 후...
큰 숨을 내뱉으면 비라바드라 A 동작이 끝난다.
몸을 움직이는 방법은 전에도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호흡하는 방법까지 충실하게 따라 하니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기가 뻥 뚫리며 체온이 올라가고, 금세 얼굴빛이 환해졌다. 내 얼굴도 그렇지만, 60대 언니들의 얼굴빛이 달라지는 걸 거울로 보니, 요가가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한 운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약해진 무릎 관절 때문에 깊은 동작을 어려워하시기도 한다. 그래도 요가 블록을 옆에 두고 관절을 보호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 내 자세에 집중하는 60대 언니들을 보면, 오래된 성벽 같은 게 떠오른다. 긴 세월에 걸쳐 풍화된 바위들이 오밀조밀 쌓여있는 그런 벽. 부스러기 돌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보는 것보다 단단할 것이다. 언니들은 나에게 젊은 사람이 잘 웃는다고 칭찬을 하신다. 늦둥이 둘째를 키우며 어딜 가도 언니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 요가반에서 막내가 됐다. 난 할머니가 키워주셨고, 교회를 오래 다녀 할머니와의 소통에 능한 편이다. 하지만 나의 시어머니는 할머니시지만, 워낙 성향이 내성적이시라 아직도 난공불락이다.
요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의 운동동지인 그녀와 잠깐 통화를 했는데, 우리는 각자 다른 색깔의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녀를 위로하니 저절로 내 마음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버님이 어머님한테
눈치를 주신 건, 며느리의 음식이 맛있어 많이 드시고 싶은데 조금만 해오라고 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내가 그 말을 하자, 그녀는 그게 맞는 거 같단다. 하긴 예전에 몇 번 우리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만든 가지튀김을 엄청 맛있게 잡수셨다. 그런 마음이 드니 비로소 목적지가 생긴 여행자처럼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고, 머리가 막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트에 따라 장을 보는 항목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계획을 정리해 기록하지 않아도 이젠 몸이 다 기억한다. 마트에 들어서면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하긴 과거 내 직업적인 커리어보다 주부 경력이 더 오래됐으니,
당연한 일이다. 배랑 사과를 갈아 넣고 면포에 걸러 부스러기 없이 깔끔하게 간장 양념을 만든 다음
핏물을 뺀 LA갈비에 살살 뿌리다가 푹 담갔다. LA갈비는 당연히 미국산으로 해야 할 거 같긴 한데, 난 특별히 지구북반구와 남반구의 화합(?) 차원에서 호주산으로 준비했다. 까만 간장 양념에 빨간 갈비 4.6킬로가 푹 몸을 담근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윤기가 자르르하게 구워 상에 올리면 가족들 모두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기대감이 차오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전은 대구전, 육전, 호박전, 동그랑땡으로 결정했다. 육전은 고기맛이 중요하니까, 한우로 준비하고, 애호박은 지난주 동네마트에서 세일을 하길래 이미 다섯 개나 사두었으니 걱정 없고, 문제는 동그랑땡인데, 청양고추라면 아주 질색하는 남편을 배려해 씨를 뺀 꽈리고추를 다져 넣어 살짝이라도 매콤한 맛을 내는 것이 이번 동그랑땡 만들기의 전략. 트레이더스 야채 코너에서 꽈리고추를 꽤 저렴하게 사두었다. LA갈비를 구울 때 꽈리고추도 함께 넣으면, 그게 또 별미다. 달콤한 간장에 윤기 나게 조려진 꽈리고추를 하얀 쌀밥에 올려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고기가 울고 갈 맛이다. 근데 냉동대구살에 붙은 라벨이 아주 상징적이다. 대구를 잡은 곳은 미국인데, 제조한 곳은 중국. 그리고 난 이 냉동대구살을 대한민국에서 샀다. 요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한데... 나의 대구전이 두 강대국의 평화와 화합을 도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란물을 입고 노랗게 익은 대구전을 휙 뒤집어 주었다.
다행히 전을 부치는 날 큰 애가 집에 있었다. 전날 수업 끝난 시간이 10시라길래, 그냥 기숙사에서 자고 오전에 집에 오라고 했는데, 기어코 늦은 밤에 온 것이다. 금방 기름을 두른 깨끗한 팬에서 처음 나온 대구전을 아이에게 먹이니 맛있다고 난리법석이다. 대구전이 끝나고 동그랑땡이 나왔을 때도 아이를 불러 먹으라고 했다. 미리 만들어둔 육전 소스(식초 간장 설탕을 1:1:1로 섞어 간 마늘과 고춧가루, 통깨 뿌려 마무리)에 동그랑땡과 대구전도 찍어먹는다. 내일 아침에 우리는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시댁으로 가지만, 아이는 신림동으로 가 언어논리 특강을 하루 종일 들을 계획이다. 그리고 내일도. 일명 추석특강이다. 입시는 대치동이었는데, 고시는 신림동인 모양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지만, 어떤 행위나 물건 그런 것에 영적인 느낌을 완전히 배제하는 게 좀 힘들다. 새벽기도, 추석특강, 불고기, 두부조림. 이건 나에게 합격이라는 영적인 기운을 주는 것들이다. 추석특강을 잘 듣고, 열망하는 합격이 한번 더 아이에게 도달하길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길.
함께 전을 부치던 남편은 어느새 소파에 누워 잠이 들고, 나 혼자 애호박 세 개를 텅텅 썰어 다 부치니 오후 5시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해치우고, 같은 반 친한 남자 친구들과 서바이벌 총싸움을 하러 나간 막내가 이제야 집에 들어온다. 총싸움이 꽤나 격렬했던 모양이다. 신발이 엉망이다. 북새통이 된 주방을 치우고 LA갈비를 구워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드디어 거실 바닥에 요가매트를 쫘악 펼쳤다.
강사님이 집에서 하라고 알려준 바로 그 비라바드라 A. 동작을 하던 중 차투랑가에서 차투랑가 단다로 내려가는 그 부분. 그러니까, 일명 푸샵 하는 자세다. 양팔과 발끝으로 엎드려서 버티다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지 않고, 천천히 고요하게 하강을 하는데 내 몸 안에 단단한 철사하나가 들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또 하고, 또 하고, 몇 번을 했는지 모를 만큼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합장을 하고 숨을 길게 내뱉으며 요가 매트에 누웠다. 나만의 사바아사나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다시 떠올랐다. 나의 장보기는 아주 효율적이었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법을 안다. 그리고 가족이 즐겁게 함께 먹을 많은 음식을 인내하며 만들었다. 이 정도면 내 손과 역량이 꽤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부다. 다른 삶을 살고자 애썼던 시간들도 버릴 것 없이 소중하다. 어쨌든 러닝하고 요가하며 전 부치는 지금의 나를 충분히 사랑해 주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