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통은 끝이 없다.
요가는 오전 9시에 시작한다. 2분이나 3분 전에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한 두 마디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늘 그 시간이 확보되는 건 아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막내를 등교시킨 후 식탁을 정리하고 나면 왠지 내 시선을 붙들고 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있다. 소파에 있어야 할 쿠션이 바닥을 뒹굴고 있으니 툭 털어 제 자리를 찾아주고, 막내의 엉망이 된 침대도 바르게 펴준다. 잠깐 창문을 열어 환기도 한다. 그리고 청소기를 가져와 윙윙 돌린다. 그러다 불쑥 나 지금 뭐 하고 있나? 오늘 아주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인데, 그런 생각이 들며 "아리야, 지금 몇 시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지금은 오전 8시 53분이에요!"
그때부터 나 미쳤나 봐를 주문 외듯 읊조리며 빛의 속도로 요가복을 챙겨 입는다. 그리고 요가매트를 들고, 현관문을 열고 튀어나간다. 엘리베이터가 마침 8층에서 내려오는 중이라 바로 하강 버튼을 누르니 금세 문을 열려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 밝은 미소를 띤 중년의 여성 분이 파스텔 톤의 화려한 요가복을 입고 서 있다.
"어? 요가 매트 가져가는 거예요? 저도 이번 달부터 요가하거든요!"
"아니요 아니요, 거기 요가매트 있어요. 전 두툼한 매트가 편해서 가져가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근데 살 많이 빠졌죠?"
"네? "
"내가 엘리베이터 타고 다니면서 봤어요."
"아 네... 좀 빠졌어요. 절 보셨군요. 호호호"
첫 만남에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중년의 아줌마라는 연대감이 있고, 추가로 요가복이라는 공통의 화제까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요가강습실로 걸어갔다. 강습실이 이렇게 안쪽에 있는 줄 몰랐다며 날 만나 다행이라고 고마워하신다. 그녀는 팔에 멋진 금팔찌를 두 개나 찼고,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발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한 파스텔톤의 화려한 요가복에 시선이 집중된다. 예전에 필라테스를 했는데, 요가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여러 번 반복했는데, "난 늘 해피니까!" 그녀의 굳은 표정은 상상이 잘 안 된다. 늘 눈과 입에 미소를 머물고 있다. 연한 오렌지, 핑크, 형광에 가까운 연두색까지 그녀의 요가복은 볼 때마다 색깔이 달라진다. 브랜드도 다양하다. 내 요가복은 아이보리 색 탑에 남색 레깅스로 고정이다. 탑을 입는 것이 부끄러워 반팔티를 입었었는데, 동작이 깊어지며 불편하다고 느껴 용기를 내 탑을 구매해 입기 시작했다. 첫날은 어깨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 어색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나 혼자만 부끄러웠던 것이다. 60대 이상 언니들은 레깅스가
아닌 편안한 바지에 반팔티를 입는다. 40대의 그녀는 보라색 반팔티에 검은 바지로 고정, 강사님의 요가복도 화려한 컬러는 아니라 새 멤버의 화려한 컬러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여러 번 그녀와 함께 요가를 했다. 내가 요가를 시작한 건 지난 4월, 이제 요가에 입문한 지 6개월째다. 어려운 목표 동작을 척척 해내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떤 동작을 하고 버틸 때 부들부들 떠는 일은 거의 없다. 단단하게 버틸 수는 있는 것이다. 새 멤버인 그녀가 초보적인 동작에서 쩔쩔매며 웃음이 터지는 걸 보니, 6개월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어떤 동작은 힘들지만, 필라테스를 했던 분이라 그런 지 또 어떤 동작은 수월하게 잘 해낸다. 어떤 동작에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할 때마다 금팔찌 두 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싱그럽다. 챙그랑.
요가매트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가 점점 넓어져 '육아'로까지 확장이 됐다. 그녀에겐 이십 대 후반의 연년생 남매가 있다. 물론 나보다는 언니일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혹독하다는 성이 다른 두 아이의 연년생 육아를 해낸 것이다. 반면 난 열한 살 터울의 늦둥이 육아. 우리 다른 색깔의 육아를 해왔지만, 육아가 힘들다는 공통의 화제가 있었다. 그래도 "난 늘 해피니까!"를 말하는 밝은 표정과 빛나는 금팔찌, 화려한 요가복의 그녀라면 두 아이 육아 정도는 거뜬히 해냈을 거 같았는데...
"난 두 아이를 키운 3년의 기억이 없어요... 남편은 너무 바쁘고, 독박 육아였는데,
기억에 남는 건 우리 큰 애가 내 옷자락을 잡고 옆에서 걷던 거. 그거 하나 기억나네."
"기억이... 없다고요?"
"네. 기억이 없어요."
두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곳에서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생애 첫 육아에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결같이 생생하고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화장실을 못 가게 보채는 아기를 안고 변기에 앉아 엉엉 울었다는 엄마, 아침에 먹으려고 떠둔 밥을 오후 2시에 먹었다는 엄마, 남편에게 아기를 좀 보라고 했더니 정말 딱 보고만 앉아 있더라며 기가 막힌 엄마... 나 역시 그렇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많이 있다. 너무 힘들어서 잊히지 않는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기억이 사라질 수도 있다니...
수련이 끝나고 사바아사나를 하면서 왼쪽으로 내 옆에 돌아누운 그녀의 등을 보게 됐다. 대단한 등이다.
난 늘 해피니까! 속에 3년의 상실된 기억이 있다. 지금 두 아이와 행복하다는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연년생도 힘들지만, 늦둥이 육아는 엄마가 너무 오래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 또 힘들지..."
"맞아요. 저 아는 사람은 왜 20년째 같은 아이를 키우냐고... "
엘리베이터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다행히 우리 둘 뿐이다.
"금요일에 봬요!"
그녀가 밝은 웃음을 띠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런 소소한 공감이 내 일상의 온도를 3도쯤 올려준다.
불 위에 달궈진 마른 프라이팬에 좋은 기름을 싹 두르는 느낌이다. 생선이든 달걀이든 마른 식빵이든 어떤 재료가 올라와도 촉촉하게 잘 익힐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