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이 러닝에 미치는 영향
늦은 오후였다.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남아 있는 점심 설거지를 하던 중이라 손도 마음도 바빴다.
눈앞에 열린 큰 창문으로 소나무와 하늘, 구름이 눈앞에 펼쳐졌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그날은 비가 그친 후의 맑은 기운과 젖은 흙냄새까지 더해졌다.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마음이 넓어졌다. 매일 반복되는 설거지와 식사준비에 대한 압박감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입가에 미소마저 떠오르는데,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
공기와 빛의 색깔이 달라졌다. 더 노랗고 환한 빛 하나가 탁 켜지는 느낌이었다. 그 낯선 빛이 공간을 채우자, 세상이라는 무대가 갑자기 따스해졌다. 내 감정도 깊어졌다. 문득 빛을 그린 화가 모네가 떠올랐다.
그가 화폭에 담고 싶어 했던 '빛'이란 게 이런 걸까? 뜬금없지만, 괜찮은 의식의 흐름이라 생각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45도 정도 올려 먼 하늘을 바라봤다. 그런데 거기... 창틀 오른쪽
상단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우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얼른 고무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찾아 급히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나 신에게 선물 받은 건가? 지루함을 참고 착하게 설거지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 더 열심히 성실하게 주부의 역할을 잘하라는 격려의 선물.
"아침 먹고 치우고 청소나, 정리 같은 걸 하다 보면 12시 금방이고, 나 혼자 점심 간단히 때우고 뭐 좀 써볼까? 해볼까? 하다 보면 바로 애들이 집에 올 시간이라, 고구마라도 쪄서 간식 준비 해두고, 애들 집에 오면 잠깐 이야기 들어주다가 또 바로 저녁 차려야 하고... 하루가 금방 가버려요. 일주일도 금방이에요."
나와 비슷하게 방송국에서 쓰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세 아이가 된 엄마의 넋두리다.
굳이 쓰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주부의 삶을 살다 보면 결국 밥 차리기에 발목이 잡힌다.
종종 신나서 하는 날도 있지만, 모든 날이 그럴 수는 없다. 한숨도 나온다. 오늘 저녁엔 또 뭘 해 먹나? 이 말 한번 안 해본 주부는 없을 것이다. 분명 시작은 로맨스였다. 나를 설레게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시작했다. 치열하게 연애하고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뭔가 완성되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남은 퍼즐 한 조각을 끼워 맞추는 거라 생각했다. '밥'은 정말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관리자형 남편과 살고 있는데, 내 희생에 대해 인정하는 법도 없고, 줄곳 이렇게 살면 남편이 죽어도
그렇게 슬프지 않을 거 같아 마음이 힘들어요. 그래도 뭐 이제 와서 바꿀 순 없으니까."
누구보다 신앙심 깊고 엄마로서 성실한 그녀의 한 마디에 그 모임에 함께 한 다섯 명의 엄마들이 동시에 빵! 웃음이 터졌다. 아마도 우리 웃음의 방점은 '바꿀 수 없다!'에 찍혔을 것이다. 이혼을 할 만큼 치명적 단점은 없다는 것이 다행이지만, 그래도 사사건건 잔소리가 많은 남편과 사는 건 힘든 일이다. 남편의 따스한 말 한마디 정도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 간단한 일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남편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에서는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 잘 꺾이는 마음이 유용할지 모르겠다. 로맨스가 끝나서 그런 걸까?
지난 주말 일주일 만에 큰애가 집에 왔다. 학식과 외식에 지쳤다며 엄마 밥이 먹고 싶단다. 자식이 밥을 달라니 어깨춤이 절로 난다. 열심히 밥을 차렸다. 오랜만에 4인 가족이 다 함께 식탁에 모여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니 비로소 알겠다. 내 설거지와 밥 차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신이 나에게 무지개를 보낼만했다. 그러니까 그때... 오래전인데,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아파트 비상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늦은 밤이었고 오가는 사람도 없었는데,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고 닦으며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너무 슬펐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동굴 속을 헤매는 것 같기도 했고, 벼랑 끝에 서서 딱 한 걸음만 내딛으면 이 지옥 같은 기분에서 해방될 거 같았다. 그저 남편의 따스한 한 마디, 공감과 이해만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작은 걸, 이 별거 아닌 걸 왜 못해주지? 그게 이해가 안 돼 더 힘들었다. 물론 반대로 나에게 이해와 공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면 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도 했겠지만. 결혼을 결정할 땐 '사랑'이라는 주관적 잣대보다 차라리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 그 비상계단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어쨌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월요일엔 욕실 수전을 교체하는 일로 작업자와 연락하고 기다리고 또 옆에서 서성대느라 러닝을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시껄렁한 실내 자전거나 돌렸다. 그래도 50분 돌렸다. 러닝을 위한 근육단련이라 생각하니 할만했다. 그리고 화요일 오전, 헬스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반바지를 입고 거울을 보다가 좀 놀랐는데, 다리에 '근육'이 있었다. 평생 이런 다리를 가져본 적 있었나? 아니, 단연코 없었다.
나는 어쩌면 극단적 하체비만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미디어가 보여주는 평균의 아름다운 다리에는 턱없이, 말도 안 되게 모자란 수준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 내 다리는 어메이징, 그 자체다. 한마디로 '러닝 머신 매직'이다. 나에게 새로운 다리를 선물한 러닝 머신을 만나기 위해 헬스장으로 갔다. (심지어 나에게 목소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다섯 대의 러닝 머신 중 벽 쪽 마지막 러닝머신을 빼곤 모두 풀가동 중이었다. 요즘 이런 일이 흔하다. '러닝 머신 매직'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딱 한대 비어있는 러닝 머신 위에 얼른 올라갔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발목을 돌리고, 가방을 놓고 그 위에 수건을 얹은 다음 준비 운동을 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 그런데 러닝 머신 LCD창이 이상했다. 화면이 하얗게 사라졌다가 다시 생겼다가 한다. 고장이 난 건가?
러닝 머신에서 러너가 달리는 곳의 벨트는 제대로 움직이지만, 달리는 속도, 그 수치가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한다. 계속 달릴 건가? 멈출 건가? 고민이 됐다. 물론 지금 속도로 달리면 계속 달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얼마나 달렸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갑자기 화면의 상태가 좋아져 보일 수도 있다. 어떡할까? 러닝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마쳤고, 이미 달리기 시작했다. 러닝 머신에서 달리다가 중간에 멈추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한번 달렸다면 끝까지 달려 기록을 만들고 싶지, 중간에 멈춰서 다시 0에서 시작하고 싶어 하는 러너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하다. 내가 얼마나 달렸는지, 어떤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제대로 알면서 달리고 싶었다. 하던 행동이 아니라, 좀 어색했지만, 과감하게 STOP버튼을 눌렀다. 그래, 내가 남편은 못 바꿔도 러닝 머신 정도는 바꿀 수 있지! 내려오자마자, 내가 평소 가장 선호하던 러닝 머신에서 빠르게 걷던 아저씨가 운동을 끝내고 내려왔다. 나는 그 러닝머신으로 바로 옮겼다. 그날 달린 거리는 5.02km.
요즘은 나를 소개할 일이 없다. 나는 그냥 누구 엄마, 몇 동 사는 아줌마로 불린다. 그래도 만약 누군가 나에게 당신 누구냐고, 자신을 소개해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저는 러닝 머신에서 40분, 달릴 수 있는 아줌마입니다.
최대 7km를 달려봤고, 주 4회 정도 하루 평균 4~5km를 러닝 머신에서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