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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라는 여름

#텃밭 #스트레스 #새우깡

by 임지원

[지원 씨~ 텃밭에서 상추 좀 땄는데 드릴까요?]


요즘 이런 카톡이 종종 도착한다. 예전엔 상추가 천 원 이천 원 그 정도의 가격이었다면 요즘은 사, 오천이 기본이다. 그중 이름이 고상하고 특이한 상추의 친구들은 육천 원, 아니 육천오백구십 원까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뿐인가 마트라는 곳은 돈도 먹지만 그보다 반나절 정도의 시간은 꿀꺽 삼켜버리는 곳이니 적어도 초록잎을 사러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 호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감사해요!! 바로 내려갈까요?]

[오 분 후에 만나요!]


오전엔 같이 요가를 한 동네 언니를 저녁 어스름에 만나 또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품에 안고 나간 새우깡 두 봉지를 언니에게 건넨다.


"재미로 받아주세요, 월요일에 엄청 스트레스받고 마트 갔다가 한 박스 샀어요."

"좋아요, 나 이 과자 좋아해요"


언니의 목소리엔 품위가 있다. 따듯함도 전해진다. 파란 비닐봉지 속에 담긴 상추를 식탁 위에 쏟아놓으니

세상에... 여름이 와르르... 마트 선반에 얌전히 놓인 상추들과는 레벨이 다르다. 저 상추를 식빵 사이에 끼워 넣으면 스프링처럼 핑 튀어 오를 거 같고, 겉절이로 무치면 접시에서 퐁 점프를 할 거 같다. 상추를 보고 힘 좋게 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하우스나 수경재배와는 급이 다르다. 거친 땅, 텃밭 농사의 결과물이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 초록 에너지가 몸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힘이 막 솟아 뭐든 해낼... 아니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으리라. 다 부숴버리겠어! 내 맘대로 해버리겠어! 하는 심정으로 고작 새우깡 한 박스를 카트에 던져 넣는 정신 나간 행동도 자제할 수 있을 것이다. 초록 에너지야 도와줘!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 해도 새우깡 한 박스는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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