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부탱을 신는 여자 이혜정 5.
선주는 분명 좋은 아이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애를 보면 화가 난다. 걔는 공부를 잘한다.
매번 물이 가득한 짜장 라면을 끓여주는 걔네 엄마와 완전 강아지 같은 남동생도 부럽다. 질투가 난다.
더 기분 나쁜 건 선주는 나를 동정한다는 거다. 분명 내가 부자고, 더 예쁜데 왜 나를 걱정해?
차라리 처음부터 친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선주가 밉다.
걔 마음을 막 뒤흔들어 놓고 싶어서 시험기간에 더욱 악랄하게 굴었다.
하지만 선주는 흔들림 없이 늘 100점을 맞는다. 재수 없다.
친구들에게 은근히 선주를 까는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다.
선주가 사는 삼성빌라에 대해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엄청 좋아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선주를 질투하니까.
나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 생일파티에 선주를 빼고 우리끼리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그 모범생은 노래방에 가면 경찰서에 잡혀가는 줄 알 거다.
선주가 내 생일을 모를 리가 없다. 생일날 급식실에서 나를 바라보는 선주의 눈은 애절했다.
그 눈을 보자 이상하게 나쁜 마음이 막 용솟음쳤다. 아주 아프게 그 마음을 꼬집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선주가 그날 생일파티에 오지 않자, 서운했다. BTS노래를 들으며 춤을 췄다.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또 춤을 췄다.
만약 선주가 왔다면, 나는 그 애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을 거다.
어쩌면 엄마가 너무 밉다고. 아빠에게 차갑게 대하는 것도 싫고,
매일 이상하고 요란한 음식 만드는 것도 짜증 난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선주는 자기도 엄마가 밉다고 했을 거다.
선주 엄마도 어지간히 분노조절장애가 있으시다.
한 번은 내가 놀러 갔을 때, 선주 동생이 식탁에서 우유를 엎은 적이 있다.
허연 우유가 식탁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줄줄 흘렀다. 선주가 급히 수건을 가져다가 바닥을 닦는 것도
신기했지만, 더 놀라운 광경은 그때 그 아줌마가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신 거다. 대박.
어른이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다. 엄마들은 다 정상이 아니다.
차라리 우리 엄마도 저렇게 울면 이상한 구두에 대한 집착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두 때문에 아빠가 엄마를 싫어하는 걸까? 나까지 아빠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선주 때문에 1등은 절대 못한다.
선주만 없으면 내가 1등인데, 아빠가 엄청 기뻐할 텐데...
그날 아빠의 학교 특강이 있던 날, 선주는 그 사진을 나랑 제일 친한 두 명의 친구가 있는 톡방에
올렸다. 미친 거다. 왜 선주가 그런 사진을 갖고 있었을까?
그 사진 속 아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아빠는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나는 그 아줌마를 본 적 있다.
커다란 개와 함께 산책을 하던 아줌마다. 그 여자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여자가 우리 아빠와 호텔에 간다고 생각하면 돌아버리겠다. 끔찍하다. 토가 나온다.
선주는 확실하게 나한테 복수를 했다. 가장 아프게 내 맘을 꼬집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아빠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아빠가 엄마와 나를 떠나 그 개새끼랑 다니는 아줌마한테 가버리면?
“여기서 뭐하니?”
앞 집 언니다. 그러는 그쪽은 여기서 뭐하세요? 여긴 옥상 바로 아래 비상구 계단, 내 아지트다.
“그냥 있는데요.”
나를 보는 눈이 기분 나쁘다. 예전에 엄마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집 여자, 기분 나쁘다고. 갑자기 언니가 내 눈을 똑바로 본다. 한참을 그렇게 본다.
"왜요? 저한테 할 말 있어요?"
“언니는... "
"네?"
"니 나이 때 아빠를 뺏겼어.”
“헐... ”
“아빠가 없는 삶은 니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불행할 지도 몰라.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
짜증인지 슬픔인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기분 나쁜 앞 집 언니는 내 등을 토닥이다가 계단을 내려갔다.
“ 엄마 이혼할까? 다혜가 하라고 하면 엄마 용기 내볼게."
“아니. 이혼하지 마. 엄마가 아빠 마음 다시 잡아. 이상한 구두, 접시 그런 거
이제 그만 사. 차라리 아빠랑 싸워. 이상하게 굴지 말고.”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알아.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J’espère que tu sera contente pour le reste de ta vie. Tu brille!
힘내! 앞으로 너의 삶은 빛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