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산책하는 여자 정미현 3.
카를로 때문에 산책하는 날이 많아졌다.
카를로는 항상 나보다 앞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불쑥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나를 걱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눈이 참 맑다. 현수가 생각난다. 내 인생을 빛내준 사랑스러운 아들.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아무도 모른다.
카페가 줄 서 있는 거리를 지나 공원 쪽으로 쭉 걸어 나가면 한참 동안 강변을 산책할 수 있다.
오늘은 카를로와 아주 멀리 다녀왔다. 밖은 벌써 컴컴하다.
오래 걸은 탓인지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마시고 싶어 돌아오는 길에 카페로 들어갔다.
카를로는 항상 카페 앞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에 묶어 둔다.
카페에 들어서자 따듯하다. 세련된 커피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앉아서 커피를 기다리는데 순간 강렬한 졸음이 쏟아졌다.
너무 멀리 다녀온 탓인가.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감겼다.
뭔가 부산스러운 소리에 벌떡 정신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테이블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며 소리를 지른다. 무슨 일이지? 불이 났나? 교통사고가 났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카페 앞 도로 한가운데에 차 한 대가 서 있고, 주변 차들이 옆으로 비껴 천천히 지나간다.
뒤에서 구경 말고 빨리 지나가라며 빵빵 거리는 차의 클락션 소리로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카를로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얼른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다. 카를로가 안 보인다.
저기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사고 차량 운전자가 서 있는 곳을 봤다.
카를로의 누런 털 색깔이 얼핏 보였다.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누워있는 카를로가 보인다.
차에 치인 거 건가?
내가 다가가자 운전자가 화를 내기 시작한다.
개새끼를 이렇게 도로에 뛰어나오게 하면 어떡하냐고, 책임지라고.
그다음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살펴보니 아직 숨이 붙어 있다.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한다. 가슴이 답답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불쑥 어떤 남자가 내 입에 봉투를 대주며 숨을 쉬라고 한다.
그리고 동물병원에 데려다주겠다며 카를로를 안아 올렸다.
끼잉깨엥 카를로의 신음소리가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힌다.
제발... 신이 있다면 나에게 이럴 수는 없는 거다.
동물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의사는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카를로를 살리지 못했다.
얕은 숨이 붙어 있던 카를로 옆에서 울고 또 울었다.
결국 그날 카를로를 아들 현수의 곁으로 보내주었다. 그래 카를로는 현수의 개니까 현수에게 간 거야.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늘 그렇듯 물 흘러가듯 내 인생이 또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카를로는 8년 전 우리에게 왔다.
교수님, 아니 남편이 야간산행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수와 나는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또다시 고립되고 말았다.
나를 향한 비난이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 유명 포털 사이트에 글이 올라왔는데, 자신이 산에서 사망한 그 촉망받던 유전학 교수의 친 딸이라며
아버지 사망 이후 거액의 유산까지 물려받게 된 상간녀와 혼외자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고,
생각 같아선 아버지를 뺏긴 그 긴 세월까지 보상받고 싶다는 절절한 내용이었다.
그 글에 응원의 댓글이 줄줄이 달리며 상간녀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현수와 친구들 그리고 엄마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얼굴은 지워진 상태고 나와 현수 얼굴만 선명했다.
죽어라! 꺼져라! 피눈물 흘려라! 살벌한 욕과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우리는 단 둘이 세상과 통하는 문을 닫고 집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벨을 눌렀다.
자신이 모 방송국 기자라며 상간녀 고소건과 관련해 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로 출국해 한 달 동안 베트남에서 지냈다.
다른 자극적인 사건들이 터지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사이 유산 관련 법적인 문제도 변호사를 통해 해결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리와 관련된 기사와 사진들을 최대한 지웠다. 그때, 우리의 사진을 공개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퍼 나른 건 대부분 가깝게 지내던 이웃들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 시간은 더 고통스러웠다.
그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현수는 아빠를 잃고 친구들의 배신을 경험하며 성급히 철이 들었다.
그 힘든 아이 곁을 카를로가 지켰다.
며칠 후, 경찰 지구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달려가 CCTV를 확인했다. 어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카를로의 자전거 거치대에 묶인 줄을 풀고
위협하듯 다가가자 놀란 카를로가 흥분해 도로 쪽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카페에서 설치한 CCTV에
찍혀 있었다. 아이 얼굴이 보인다. 아는 얼굴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경찰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그다! 그다음, 그의 아내, 그리고 딸로 보이는 아이가 들어온다.
바로 카를로의 목줄을 풀고 위협한 그 아이다.
우리는 경찰과 함께 마주 앉았다. 나를 본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그의 아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본다.
뭐든 해 볼 테면 해보라는 듯 당돌한 눈을 뜨고 있는 아이를 보자, 정신이 아득했다.
그의 아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굽힌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희가 적절하게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나는 또 상간녀가 되었다.
“그냥... 없던 일로 할게요. 괜찮습니다.”
경찰이 여러 번 내 의사를 확인했다. 나는 끝까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아줌마, 죄송하긴 한데요, 경찰 아저씨들 다 있는데서 제가 말할 게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갑자기 당돌한 말을 꺼내는 아이. 동석한 경찰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판이다.
“다혜야, 그만해.”
그가 막았다. 나는 몸을 돌려 그의 아내를 보며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그제야 경찰은 뭔가 이해했다는 듯 아! 짧은 탄성을 터졌다.
뒤도 돌아오지 않고 경찰서를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조금 빨리 걸었다.
더 빨리, 더 빨리 나는 계속 걸었다.
“미현아! 미현아! 잠깐만!”
그가 나를 부른다.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에 불이 켜 있다. 아까 안 끄고 나간 모양이다.
거실의 불이 켜 있던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수를 생각했다. 너는 지금 카를로와 함께 있니?
엉켜버린 거대한 실타래가 내 앞에 놓여 있다. 점점 커진다.
나를 삼키려고 달려든다.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