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산책하는 여자 정미현 4.
교수님과 나를 결혼시켜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려고 한
엄마의 해피엔딩에는 오류가 많았다. 조금만 생각하면 예상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것들 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우리 부부에 대한 소문이 이미 퍼지고 있었다.
가끔 뉴스에 남편이 출연했던 게 문제였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관심을 갖고 몇 번 검색을 하면 우리의 스토리는 금방 알 수 있다.
남편의 연구가 계속 주목을 받으며 나는 로또 맞은 상간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난 그의 돈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현수를 위해 쓰는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되는 건 행복이었지만,
남편은 나를 아내가 아닌 현수를 낳은 여자로 대했다. 심지어 자퇴한 제자를 대하듯 하기도 했다.
그는 너무 바빴고, 항상 만날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그는 집으로 퇴근했고, 아침마다 집에서 출근을 했다.
그런 그를 위해 일찍 일어나 아침 식탁을 차리고, 그의 입을 옷을 챙기고, 따듯한 차를 끓여 텀블러에 담아
집을 나서는 그에게 건넸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는 현수를 봤다.
그는 현수의 아빠다. 현수는 내 아들이다. 우리는 가족이다.
만약 그 오피스텔에서 너를 창밖으로 던지고 나도 죽었다면, 지금의 가족은 존재하지 않을 거다.
내 생각도 오류 투성이었다. 결국 잘못될 일이었다.
“미현아, 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아. 기정이가... 아빠를 원해. 많이 힘들어 해.”
“... 여긴 집이 아니면 뭐예요?”
“현수 열다섯 살이면 많이 컸잖아. 나 그냥 놔줘라.”
그 밤 우리는 심하게 다퉜다. 새벽녘 남편은 그 시간에 산에 가겠다고 장비를 꾸렸다.
추운 겨울에 눈까지 오는 날, 무슨 야간 산행... 나는 남편이 딸에게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 물을 끓였다. 너무 뜨겁지 않게 차를 우려내 텀블러에 담았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그에게 건넸다.
“미현아, 고마워. 그동안 고마웠어.”
그는 떠났고 돌아오지 못했다.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 날, 정상을 700여 미터 앞둔 지점의 작은 벤치에서 그의 빈 텀블러가 발견됐다.
그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고,
삼일 후 벤치 뒤쪽 절벽 아래 등산로도 아닌 숲에서 수색 견에 의해 발견됐다.
그가 떠난 후, 어떤 날이 생각났다.
아기를 낳고 며칠 째 씻지도 못한 채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원룸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아무런 의욕이 없어 그냥 가만히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잠시 아기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본과 3학년 선배였다.
모임에서 몇 번 마주친 게 전부인 선배인데 왜 찾아온 건지 당황스러웠다.
선배도 나를 보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선배는 들어오더니 아기는 보지도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 그만두시라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수건들, 옷가지들을 모아 세탁기에 넣었다.
익숙하게 세제를 넣고 세탁 코스를 선택해 빨래를 시작했다.
나는 보채는 아기를 안고 바쁘게 움직이는 선배를 바라봤다.
집 정리를 마치고 선배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낙태를 선택했어. 널 보니 내가 한 선택이 잘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넌 모를 거야 내 기분. 나는 정말... 불행하거든...”
그는 악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