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가 아니라 세르모니였다.
수능날이 가까워 오자, 아이는 학교 급식은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나는 이 반찬 저 반찬 시도를 해보다가 결국 불고기와 두부조림을 선택했다.
간만에 불고기 양념 직접 한 것도 딸의 수능 도시락 때문이었다.
물론 시판 양념 불고기가 훨씬 맛있겠지만, 나의 부족한 정성이 혹시나 불행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어떤 성분이 우리 아이의 뇌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까?
수능 시험이 가까워 오면 엄마들은 뭐든 조심을 하게 된다.
딸 말로는 수험생들도 불안감 때문에 서로 싸우고 짜증내고 하다가도 수능이 가까이 다가오면
갑자기 모두 착해진단다! 그러니까 수능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성으로 보는 것이다.
한우 불고기를 농협에서 구매해 마늘을 꽝꽝 다져 넣고,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도시락을 쌌다. 수험생에게는 보온 도시락통이 필수템이다. 하나 쯤은 고가로 반드시 구비를 해두면 든든하다는 것.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학원 알아보기 보다 도시락싸는 데 더 열심을 다하게 된다.
체력이 너무 중요하다. 아프면 절대 안된다. 그러니 양질의 음식을 먹여야 한다.
교실에서 흑염소즙, 녹용즙, 홍삼 등등 그런 거 안먹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끼니마다 밥을 잘 먹여야 하는 것이다.
당일 아침이 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아이를 깨우고, 종종 깊은 숨을 내쉬며 왔다갔다하고 있는데,
새벽기도를 마치고 남편이 들어온다. 아이 마음에 작은 파도도 일지 않게 하기 위해 입도 뻥긋 하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아이 아침을 먹이고, 차에 태워 고사장으로 데리고 갔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참느라 아랫입술을 깨물고 또 깨물었다.
우리는 거의 7시쯤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주변에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딸아이를 끌어안고 내가 했던 마지막 말은
"진짜 마음 편하게 시험봐. 떨어지면 엄마가 재수 시켜줄게."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등에 맨 거대한 백팩과 긴 롱패딩.
그날을 위해 준비한 두툼한 기모 츄리닝 바지, 털 달린 크록스 신발. 뭐 하나 걸리는 거 없이
하루 종일 편안하게 앉아 시험을 보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다.
그래도 모든 것이 걱정되었다.
내 걱정은 궁극엔 쓰고 있는 안경알이 빠지면 어떡하지에 이른다... 그냥 모든 것이 두려운 거다.
그렇게 아이를 고사장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다시 고사장으로 갔다. 지금 여기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아이가 시험을 보다가 뛰어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쩌나?
차를 세워두고 여기서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무도 없는데 나혼자 여기 있을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학부모 기도 모임 팀장님이 기도회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톡을 보냈다.
가보니 그곳에는 나와 같은 수험생 엄마들이 거의 수십명이 모여 엉엉 울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수험생 엄마들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중학생까지 징글징글 속을 썩이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달라진다.
그동안 저지른 중2병의 만행을 반성이라도 하듯 미안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다.
딴짓 말고 공부 열심히 해둘 걸... 본인 스스로 생각한다.
그렇게 착한 눈을 뜨고 최선을 다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으니,
그 모습을 보는 엄마 아빠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철 든 표정 때문에 잔소리를 접게 된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그렇게 눈물을 쏟게 된다.
그래도 거기서 그렇게 많은 엄마들과 함께 울부짖다보니 숨도 쉬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능이 끝났다. 뉴스가 나오고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고사장 앞에 차를 대고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교문 앞에는 이미 불법 주정차한 차로 도로가 엉망진창.
경광등까지 번쩍대며 나타난 경찰차에서 몇명의 경찰이 내려 주변을 정리하고 난리다 난리.
1차로 시험이 끝난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자 아이를 맞는 부모와 아이들로 교문 앞은 완전히 북새통이 되었다. 엄마를 끌어안고 우는 아이. 아이의 가방을 받아 어깨에 메고 손을 잡고 나오는 아빠.
그 모습만 봐도 눈물이 쏟아진다.
우리 아이는 제2외국어 시험까지 보느라 2차로 나왔고, 늦어지는 바람에 밖은 완전히 컴컴해졌다.
무리 속에서 얼굴이 반쪽이 된 아이가 보였다. 얼른 아빠가 다가가 가방을 받고,
아이 손을 잡고 데리고 나왔다.
빠져 나오는 데 만도 한참이 걸릴 만큼 아직도 그곳은 북새통이었다.
길 건너에서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는데 아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엄마 나 재수해야돼." 그게 아이의 첫 마디였다.
재수든 재수 할어버지든 맘대로 하라며 아이를 데리고 고깃집으로 가 모든 것을 잊고 신나게 저녁을 먹었다.
다시 생각해도 살 떨리는 하루.
수능은 실력을 테스트하는 거라기 보다는 어떤 예식, 통과의례 같은 느낌이다.
그날의 그 긴 하루 동안 그곳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시험지와 결투를 벌이는 것.
답을 알고 모르고만큼 정신력과 체력으로 버티는 것이 바로 수능이다.
나는 옆에서 보며 준비만 했는데도 이렇게 사연이 구구절절이다.
아이들은 어떨까? 그 불안한 마음, 따듯하게 붙잡아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