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낯선 문제집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
수능 시험 날을 카운트 다운하던 시절,
아이는 등교하는 차 안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다.
“엄마, 수영하고 싶어. 수영하고 싶어.”
눈을 감고, 팔을 휘저으며 수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앞에 서서 여기 팠다 저기 팠다.
여기를 파고 나면 다시 물이 들어오고, 다시 저쪽을 파면 또 파도가 들어와 사라지는 구멍 파기.
어느 구멍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 채, 계속 파고 또 파고... 얼마나 힘들까. 이 죽일 놈의 입시가 과연 끝날 수 있을까 절망적인 마음이 들었던 시간들... 팔을 휘저으며 우리 아이는 자유를 갈망했으리라.
수영복을 하나 사주고 같이 수영장에 갔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인데, 물로 들어가더니 나는 아랑곳도 않고 무시무시하게 질주를 한다. 그래, 잠깐이지만 너는 지금 자유를 만끽하고 있구나. 너는 자유다. 지금 이 순간만큼. 우리의 입시가 끝났다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딸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시한폭탄을 얼굴 미간에 장착하고 사는 거 같았다.
무슨 말만 하면 사자처럼 물어뜯기 일쑤. 사실 나도 만만치 않은 투사 스타일이라 몇 번은 참아주지만 참다가 폭발을 하면 또 이게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지게 된다. 이제 생각해보면 엄마인 내가 입시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다. 학종, 수시, 교과 내신, 비교과 활동 뭐 이런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입시라는 큰 숲... 그 숲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거다.
고3이 되면서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고3이 힘든 걸 뭐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뭔지 생각을 해보면,
고1 때는 뭔가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감이란 게 있기 때문에 나름 지낼 만하다. 괜찮은 거다.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동네 일반고가 아닌 비평준화 지역에서 대학을 많이 보내기로 이름을 날린
자립형 공립고등학교에 나름 선발이라는 것이 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중학교까지 상위권이었으니까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생겼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교복을 입고,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운명의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 커다란 실망이 찾아온다.
대부분 아이들은 그 시험을 망친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 반장까지 된 어떤 아이는
중간고사를 마치고 일반고로 전학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 역시 갈등했었다.
하지만 이때, 의연하게 좋은 성적을 받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 아이들에게는 대부분 먼저 대학 입시를 치러본 엄마나 언니가 뒤에 딱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문제집을 풀면서 학교 생활을 하더라는 거다.
첫 시험을 망치고 혼란에 빠진 아이는 그 의연한 아이들이 푸는 처음 보는 문제집의 이름을 적는다.
날더러 사 오라 한다. 서점에 가보면 그 문제집들은 없다.
나중에 보니 대부분 유명 인강 선생님의 교제들이었다.
( 그 낯선 문제집들의 이름은
국어는 [마르고 닳도록], 수학은 그 유명한 유학파 인강 선생님 [현우진]의 교제였다.)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나마 착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이는 문제집을 손에 넣지만, 풀다 보면 본인 수준과 공부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책장에 꽂혀 다시 나오지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금방 기말고사가 시작되고.
그 시험마저 망치고 나면 아이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뭘 할 수 있을 거라는 1학년, 2학년 땐 내신 포기하고 정시로 대학 갈 거야! 하며
도도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결국 내신은 한 등급도 올리지 못한 채 3학년이 되면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심정이 돼버리는 거 같다. 한 걸음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그 여정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걸 몰랐을까. 왜 나한테 이런 거 말해주지 않은 건지. 입시 제도에 대한 이해보다 사실 이런 게 더 중요한 정보였을 텐데... 알았다면 좀 더 수월하게 3년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안갯속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엉금엉금,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일단 둘째는 아직 초등학생이니 시간에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땐 입시제도가 또 많이 달라질 거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처럼 벌벌 떨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그 3년의 입시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입시 전략보다 아이와 함께 방황하거나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3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두려워하지 말고, 입시의 핸들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