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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ug 29. 2020

드라마 'SKY캐슬'의 추억

수능이 코 앞이다.

 2018년 겨울 방영한 드라마 SKY캐슬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특별하다. 


독서토론 중 자신의 의견을 뽐내는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


그해 수능을 본 우리 큰 딸이 드라마 방영 중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계열에 논술전형으로 합격한 것이다.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나 내 인생의 판을 완전히 바꿔버린 이 녀석이 드디어 대학에 갔다! 브라보! 


수험생의 엄마로 보낸 3년은 징글징글했다. 

그래도 합격을 했다니 눈물 콧물 쏟으며 보낸 그 세월이 곧바로 추억이 됐다. 

몇 년 간 내 인생을 짓누른 아이 입시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자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졌다. 

예비 초등 학부모들까지 드라마 SKY캐슬을 보며 입시에 대한 공포감을 키웠지만, 

우리 집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겼다. 

"우린 끝났잖아~"  


딸아이도 합격을 확인하고는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가 갑자기 소리소리를 지르며 펄펄 뛴다. 

나는 엉엉 울고, 남편은 친지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대학 그게 뭐라고 그토록 난리법석을  떨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다. 

합격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달렸지만, 사실 딸과 나는 아침저녁으로 갈등을 겪었다. 

한 며칠 잠잠했다가도 사소한 일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말해 뭐하랴. 

그러니까 징글징글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착착 진행된 듯 하하호호. 

입시를 위해 했던 이런저런 사소한 결정과 선택들을 찬양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행운 따위에도 

완전히 귀를 닫은 채 그냥 우리에게 찾아온 합격의 기쁨에만 취했다. 


그런데, 드라마 SKY캐슬이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에 이르자 

점점 날카로워지며 우리의 아픈 곳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 공부만 해. 

   다른 건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  


청소년기에 해야 할 것이 공부만은 아닐 것이다. 

친구와 싸웠다 화해도 해보고, 옷이 담긴 서랍도 확 뒤집어 다 쏟고 다시 담아보고, 

노선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방황이라는 것을 하며 

내면의 뭔가를 정리하기도 하고, 

없는 걸 찾아내 보기도 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그걸 못하게 했다.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나는 겁이 덜컥 나 그냥 그 친구를 멀리하라는 말만 했다. 

한 번은 어떤 친구와 싸우게 됐는데, 그 친구가 욕을 마구 했다는 거다. 

멀쩡해 보이던데, 그런 아이도 욕을 하는구나!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냥 그 친구를 만나지 말라고 하고, 

너는 그 친구에게 욕을 했냐고만 물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 그 친구와 다른 반이 되자 기뻐하며  잘됐다! 다행이다! 

그 친구랑 복도에서 마주쳐도 절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그게 답은 아니었던 거 같다. 

그냥 더 싸우게 두고, 우리 아이도 그 아이에게 시원하게 욕을 하며 한판 거하게 싸우고 

화끈하게 화해까지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그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웠다. 


요즘도 자신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 주변의 사람들과는 소통하기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넌 공부만 해, 엄마가 데리러 갈 테니 걷지도 말고, 

엄마가 정리할 테니 손대지 말고,

공부를 방해할 만큼의 깊은 인간관계도 필요 없다고 가르친 것이 과연 옳았던 걸까.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일들이 계속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내가 잘못한 걸까? 

가끔 생활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본 적도 있다. 

저 아이의 엄마는 어떻게 키운 걸까? 나는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염정아는 딸을 의대에 합격시키며 며느리로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 한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없었을까? 

방송 일이 지긋지긋할 즈음 결혼을 하며 뭔가 당당하게 쉼에 돌입했으나 

집에서 할 것도 없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가 예전과는 달리 신나게 원고를 썼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일, 이대로 접었으면 어쩔 뻔했어. 

함께 일하는 동료도 근사해! 일은 재밌어! 행복해!! 


그런데 모유수유에 발목이 잡혔다. 결국 1년 정도 아기만 돌보며 육아 우울증을 경험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울었던 이유다. 그 시절 내가 딱 82년 생 김지영이었다. 

다행히 1년 정도 지나 다시 일을 시작하며 한번 달렸지만, 또 십 년이 지나 

갑작스럽게 늦은 임신을 하고 다시 경단녀가 되어 늦둥이 육아에 내 40대를 바쳤다. 

그 시절에도 나를 증명하고자 했던 여러 시도들이 이어졌지만 많이 실패했고, 좌절했다. 

그즈음 큰 아이 입시가 시작됐다. 


내 직업인 방송작가는 겉보기엔 왠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을 알고 보면 참 고된 노동이다. 

대접받기보다는 뭔가 알아서 다 챙겨야 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뭐랄까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해서 뭔가 실행하는 능력 어쩌면 집념, 그런 게 아주 발달이 된 거다. 


그 실력으로 아이의 눈, 귀, 다리... 뇌가 되어 아이의 모든 일상과 학업 스케줄, 마음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다행히 아이는 잘 따라와 줬고, 갈등이 생기면 해결될 때까지, 

아이가 내 생각에 동의해줄 때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잔소리를 멈추지 않은 건가? 

아무튼 아이 성적 올라가는 게 너무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마치 내 인생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SKY캐슬에서 염정아는 살인과 불법까지 묵인하며 딸을 의대에 보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고자 했다. 

뭐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해도 집행유예 정도의 유죄가 인정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SKY캐슬을 보며 딸아이를 끌어안고 울며불며 아주 볼만한 푸닥거리를 많이 했다.


"엄마가 미안해... 공부만 하라고 하고, 공부 잘하면 예쁘다 하고, 

공부 안 하면 인생 폭삭 망할 듯 겁줬던 거 그거 미안해... " 


세월이 참 빠르다. 우리 아이 1학년 반짝 학교 다니며 고딩 같은 대학생활 살짝 맛만 봤는데, 

코로나 19로 이제 다시 집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  


"토익 공부했니?" "운동 가자!" "방 치워라!" "학점은 얼마 나왔니?"

"엄마, 제발! 그만!!!"
"아이고 미안. 엄마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이제 니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해라! 

 엄마는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 

.

.

.

그런데, 생각할수록 엄마가 많이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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