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부츠
앞서 걸어가는 딸의 부츠가 눈에 들어왔다. 진갈색의 털부츠는 바닥이 많이 닳아 있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쯤이다. 아이가 갑자기 부츠를 사달라고 했다. 부츠를 싫어하는 아이인데 어쩐 일인가 싶었다.
첫 부츠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장만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부츠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신겼지만 딸 아이는 싫어했다. 몇 번 신지도 못하고 그 신발은 조카에게 물려주었다. 이후에도 ‘이번에는 다르겠지’하며 장만한 부츠는 답답하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였다. 여러 해 겨울 부츠에 실패했기에 딸 아이가 부츠 이야기를 꺼내자 달갑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 많이 신으니 따라 신고 싶은 것 같은데 괜히 돈만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남편과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또 샀다가 안 신으면 내가 신지 뭐. 이제 발 사이즈도 비슷하니 큰 거 사서 안 신으면 내가 신을께!”
인터넷으로 주문한 신발 사이즈는 240이었다. 내 발은 운동화 기준 230이고, 딸 아이 발은 220인데 240을 주문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자라는 만큼 보통 옷이나 신발을 크게 사곤 한다. 한 해만 입으면 아깝다는 본전 생각에서다. 넉넉한 신발을 좋아하니 230은 사야겠는데, 내년에도 신으려면 240은 사야했다.
처음 신발을 신었을 때 꼴이 영 우스웠다. 몸에 맞지 않는 어른 신발을 신고 있는 것 같았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과연 앞으로 잘 신을까 하는 못 미더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오히려 신발이 커서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겨울 내내 그 부츠 하나만 계속 신었다. 운동화도 있는데 뒷전이었다. 안 신으면 내년에 내가 신겠다고 플랜 B도 세웠는데 내년에 못 신겠다. 부츠와 함께 뛰고, 눈싸움하며 겨울을 보내고 나니 몇 년 신은 신발 같았다.
2월 말이었다. 3월 새 학기에 신을 새 운동화를 사러 근처 아울렛을 찾았다. 발이 커서 이제 주니어가 아니라 성인 여성 운동화를 보러 갔다. 이 신발 저 신발 신겨보는데 230이 작았다. 지난 겨울 분명 220이었는데 230도 작다니 갑자기 커져 버린 딸아이 발을 보며 후회가 몰려왔다.
‘맞는 거 사 줄 걸 괜히 큰 거 사서 발만 도둑놈 발처럼 키운 거 아냐? 230으로 살 껄.’
날씬하게 키웠으면 하는데 통통한 몸에 발도 큼지막해졌다. 속상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설명했다. 발 길이는 230인 나와 비슷하지만 발볼이 커서라고. 곰 발바닥 같은 남편 발을 닮아서 발볼이 큰 것도 있을텐데 괜히 옆에 벗어 놓은 240 부츠가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230을 사서 예쁘게 잘 신길 걸, 괜히 큰 걸 사서 신겼다. 매년 본전 생각에 이렇게 큰 걸 산다.
지난 여수 여행에서도 어김없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간 여행이라 아침을 챙겨야 했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호텔 조식 뷔페를 이용하기로 했다. 점심, 저녁을 위해 아침은 좀 가볍게 먹어야겠다 마음 먹었지만 뷔페를 찾은 내 손과 마음은 분주했다. 한 접시 가득 음식을 먹기가 무섭게 바로 일어나 다음 접시를 찾는다. 깔끔하고 다양한 메뉴와 달콤한 디저트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해 보지만 마지막 한 접시는 분명 본전 생각이 더 컸다. 배불렀던 식도락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저울 앞에서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그놈의 본전 생각에 다이어트도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 3월 중순이다. 날씨도 포근해서 겨울 점퍼를 세탁소에 맡길까 고민 중이다. 그런데 딸은 아직도 부츠를 신는다. 어제도 태권도 가는 길, 도복을 씩씩하게 챙겨 입은 딸은 부츠를 푹 끼어 신었다. 참지 못하고 결국 한마디했다.
“이제 그만 신고 빨아 넣자!”
딸 아이는 이게 푹 끼어 신기 편하다는 말을 남기며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저렇게 편하게 봄까지 신었으면 된거지?’
또 본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