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제주살이, 글쓰기
내 버킷리스트의 맨 위를 장식하던 "책 쓰기"가 끝난 지 한 달 반. 나는 (자칭) '작가'라는 자랑스러운 칭호를 획득했다. 내 책꽂이 한쪽엔 <<이 순간의 스냅샷>> 이란 새로운 책이 나타났고, 문득 눈길이 닿을 때마다 미지근한 숨을 내쉰다.
2020년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버킷리스트를 완성해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당당히 1번 자리를 차지한 '자서전 쓰기' 계획이 2021년 상반기까지 넘어올 줄은 몰랐다.
더는 늦출 순 없어
글쓰기, 첨삭하기, 내지 편집하기, 표지 디자인, 인쇄 맡기기... 책 쓰기는 역시나 쉽지 않았다. 내가 작가이자 편집자이자 기획자이자 사진작가이자 디자이너가 돼야 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 기쁘면서도, 생각과 많이 다른 색감과 글씨 두께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으니, 자서전 또한 완벽하지 않음을 잘 드러냈네요. 그게 더 멋진걸요." 하는 지인의 위로가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실망할 뻔했다.
버킷리스트를 하나 완성했지만,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흐르는 세월에 나는 밀려가고 있다. 두렵다고 멈출 수도, 궁금하다고 뛸 수도 없다. 다만, 퇴근 후와 주말의 시간을 몽땅 가져가던 책 만들기는 끝났다. 취미라고 소개할만한 일이 하나 줄었고, 하루 시간표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시험만 끝나면 열심히 놀 거야!" 했지만, 막상 시험이 끝나니 생각만큼 열심히 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아, 멋진 칭호를 얻었으니 그건 좋다.
제주에 온 지 한 달. 장마전선이 전라도에서 제주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가길 반복하고 있다. 습한 날씨로 집에 곰팡이가 슬지는 않을까, 조심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흐린 구름과 섞여 희미해져 버린 바다의 경계를 유심히 찾게 된다. 이윽고 습하고 더운 기운에 문을 급히 닫는 일상이 반복된다.
여행할 땐 흐린 날이 그저 원망스러웠는데, 제주도에 살다 보니 흐린 날이 썩 매력적이다. 덥지도 않고 무거운 분위기로 웅장한 바다 전망과 한라산 전망을 만들어준다. 오늘은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고기압과 저기압의 경계, 즉 장마전선이 선명히 보였다. 저 구름 경계에서 쉬이 섞이지 않는 기단이 서로를 밀어내고 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비를 북쪽 멀리 밀어내면 한여름이 오겠지. 과학의 감성이 우중충한 분위기를 더욱 돋워, 경치에 콩깍지를 씌게 했다.
나만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제주살이"는, 일상을 꽤 크게 흔들고 있다. 성남에서 매일 2m 앞 맞은편 오피스텔에 갇힌 시야가, 바다 멀리 20km까지 확장됐다. 이젠 커튼에 가린 희미한 형광등 빛이 아닌, 한치가 몰려드는 LED가 밤의 풍경을 채운다. 사람과 차가 몰려드는 거리 대신, 바람과 돌담이 이어진 올레가 동네를 이룬다. 조경이 훌륭하게 꾸며진 탄천을 뛰던 게 가끔 그립지만, 언제나 자유롭게 쓰레기를 버리던 쓰레기장이 떠오르지만, 걸어서 2분 거리 홈플러스, 지하철역, 반찬가게, 로켓배송이 아련하지만! 제주의 시골이 주는 시원한 행복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제주의 매력에 빠져서 다시 육지로 돌아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루하루를 새삼스레 느끼며 살아가면, 과거의 우연들이 겹쳐 맞이한 '지금'이 잘 믿기지 않는다. 내가 그 대학에 추가 합격하지 못했다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추첨에서 떨어져 다른 군대에 갔다면, 내가 그 회사 인턴으로 합격했다면. 이 순간 나를 여기 있게 만든 수많은 우연의 조합이 너무 신기했다. 지금 제주 어느 올레길 옆 벤치에서 연보라와 다홍색 사이 어딘가로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았다. 너무 신기하니까. 안 그래요?
보통 나의 글쓰기는 일기였다. 오늘이라는 순간의 사건, 감정, 상태, 생각, 상상을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갔다. 그러면 지금의 내가 정리되는 느낌과 함께, 미래의 어느 순간에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숙제로 시작된 일기가 지금까지 1,000개는 넘었을 것이다.
군대에서 진중문고 책꽂이에 꽂혀있던 <<숨결이 바람 될 때>> 라는 책을 읽었었다. 한 의사가 암에 걸렸을 때,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인생을 글로 남겨 엮은 책이다. 인생의 끝 무렵, 더는 어떤 창작도 힘든 그 순간까지 그는 글쓰기에 '집착'하듯이 글을 남겼다. 그 책은 아내가 그의 죽음을 관찰하며 마무리했던 것 같다. 나는 궁금했다.
자신은 읽지도 못하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을까?
내 수많은 일기는 <<숨결이 바람 될 때>> 와 비슷한 처지였다. 계속해서 축적될 일기 중 '미래의 나'라는 독자를 만날 일기는 얼마나 될까?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책으로 엮으면 책 10권은 나올 분량인데, 나는 10권을 착실히 읽을 수 있을까? 소설 <<토지>> 도 5권까지 읽은 게 다다. 사실상 모든 일기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비단 일기만 그럴까? 일기 말고도 내가 쏟아낸 글들,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숙제, 뉴스를 보다 울분에 북받쳐 익명 블로그에 올렸던 하소연, 자서전에 들어간 300쪽 분량 17꼭지의 글, 하다못해 SNS에 올렸던 짧은 글까지. 공급만큼 수요가 충분치 않을 것이다.
읽히지 못할 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난 왜 글을 쓸까?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 브런치에 첫 번째 글을 올리고 있다. "이제 새롭게 블로그를 시작해보자!"하고 말이다.
맞다, 나는 글쓰기가 재밌다. 누가 읽어줘서 기쁜 게 아니다. 글을 뱉어내는, 생각을 표현하는, 지금을 추억하는 것이 즐겁다. 물론 글을 쓸 때면 항상 누군가가 글을 읽을 거라고 상상한다. 문장을 정제하고, 생생한 표현을 떠올리고, 맞춤법을 검사한다. 누군가가 글을 봐주고 좋아해 준다면 너무 행복하다만, 나를 쓰도록 만드는 주된 힘은 그저 '쓰는 행복'이다.
그렇게 이 블로그에 첫 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