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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Oct 22. 2021

가을, 제주

제주의 가을이 느껴졌다. 이런 거였구나.

눈에 띄는 공기압 경고등. 노란색이 계절에 퍽 어울린다.


차를 사고 처음 보는 경고등에 가슴이 철렁. 서둘러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확인한다.

'내가 못 같은 걸 밟았나? 타이어는 아직 쌩쌩한데...'

맨눈으로 봐서는 티가 안 나는 걸 보아, 중학교 때 배운 샤를의 법칙이 떠올랐다. 공기압은 1기압, 일정한데 온도가 떨어지면 부피가 수축한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내 손이 주머니에 쏙 들어가 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살짝 구겨져 몸이 좁아 든다.

일하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허벅지 아래로, 스스로 낑겨 들어간다. 바깥이 두려워 숨어 들어가는 것처럼.

남들보다 유독 손발이 차다 보니 가장 먼저 살겠다고 숨는 손. 가장 정확한 추위탐지기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본다. 시원한 바다가 넓게 펼쳐진 광경을 기대하며, 드높은 하늘에 새털구름 자잘히 쉬어 가는 광경을 기대하며.

그런데 창문을 열자마자 나도 모르게 '어후'하며 뒤로 살짝 물러선다. 제주에서는 처음 뵙는 손님이 불쑥 들어온다. 사실은 매년 보는 친구지만, 제주에서 첫 만남은 조금 낯을 가리게 된다.


가을이다.


억새가 휘날린다. 가을이다.


여름이가 간 지 한참 됐는데, 여름의 자취가 얼얼하게 남아 있었기에 여름이를 그리워할 겨를이 없었다. 뒤늦게 헐레벌떡 가을이가 뛰어왔는데, 그동안 조금 외로웠는지, 겨울이랑 손잡고 같이 오려고 했었다. 겨울이가 졸린다고, 조금만 더 자다 오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허탈해하며 패딩을 꺼냈을 것이다.


저번 주까지 나는 반팔을 입었다. 그러다 저번 주말에 패딩을 입은 사람을 봤다. 며칠 새 10도 가까이 온도가 급강하했다. 게다가 제주에선 강풍주의보까지 터지는 바람에 체감온도는 패딩 입기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집에 와서 부랴부랴 진공 팩에 넣어뒀던 가을옷을 꺼낸다.


아직 제주는 푸르르다. 초록빛이 한라산을 감싸고 있고, 올록볼록 초록이 오름들도 옷 갈아입으려면 한참 남았다. 밟히는 낙엽은 작년의 흔적이리라.

푸른빛은 땅에 뒤지지 않는다고, 시원한 쪽빛이 하늘을 채우고 있다. 저 멀리 보길도와 추자도가 보이는 걸 보니, 하늘이 청량하여 드높은가 보다.

바다 너머, 보길도가 보인다. 하늘이 맑다는 증거다.


제주의 10월은, 아니 2021년 제주의 10월은 꽤 역동적이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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