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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Aug 06. 2021

노을 지는 제주 바다를 안고 달려!

바다, 노을, 올레

뛰기 좋은 탄천. 출퇴근길이자 운동코스이자 산책로.

탄천은 꽤 좋은 러닝 코스였다.

자전거도로와 구분된 평탄한 길, 조경이 잘되어 있고 시원한 밤에도 가로등이 발밑을 안전히 비춘다. 내가 매일 뛰던 코스는 딱 5km였다. 23~24분 안쪽으로 기록 단축을 욕심낼 무렵, 제주로 떠나왔다.



유산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지


학창 시절, 남중남고의 체육 시간과 점심시간엔 항상 땀이 범벅이었다. 축구와 농구를 주로 했는데, 숨이 벅차오를 때까지 열정적으로 뛰었다. 내 인생에서 체력과 하체 근력이 가장 좋았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때의 기억이 내 운동관을 지배했고, 헬스장에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것은 '운동'이라기보단 '차력' 같이 느껴졌다. 엄청난 분란을 일으킬 발언인데, 지금은 그런 사상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랫동안 근육량, 특히 상체 근육량이 평균 미만이었다.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 운동은 따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계획적 활동'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스포츠를 해야 할 수업도 없고, 친구와 함께 스포츠를 즐길 놀이도 없다. 그렇게 '운동'하기 위해 집 주변을 뛰기 시작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30분, 5km.



제주에 와서도 무병장수를 위한 운동을 지속해야 했다.

제주버전 건강의 길은 단번에 찾기 어려웠다. 우리 마을은 오르막 내리막이 꽤 심했고, 올레길로 지정된 곳은 비포장도로가 많았다. 비포장도로나 돌길은 안경을 쓰지 않고 뛸 때 넘어질 위험이 있어서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그렇게 마을길 이곳저곳을 탐색하다 7km가 넘어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기도, 최대한 돌았는데 4km도 안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답을 찾게 되리라,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최적의 코스를 찾아버리고 말았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집에서 천천히 출발한다. 미세먼지 없는 날씨, 해와 구름이 적당히 섞인 날씨면 더 좋다. 처음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가며 몸을 푼다. 이 길은 나중에 지옥의 오르막이 될 구간이다. 적당히 마을을 지나쳐 7시 30분이 되면 그곳에 온다.

그곳, 멋진 노을이 있는.


밤이 뛰기엔 더 시원하지만, 이것을 놓칠 수는 없다. 하루하루 노을빛이 다르다는 걸 아는가? 세상에 같은 노을은 없다. 분홍색, 보라색, 시뻘건색, 복숭아가 떠오르는 다홍색, 흐리맹맹한 노랑. 매일 날씨와 구름의 양으로 노을의 색깔을 예측해보지만, 결국 직접 보기 전까지 절대 알 수가 없다. 오늘도 뛰다 말고 연신 카메라를 눌러댄다. 마음 같아서는 해의 하루 인사를 더 감상하고 싶지만, 노을을 즐길 곳은 뛰면서 몇 군데 더 있다.

돌담과 바다. 오늘은 파스텔톤이 섞인 노을.


올레길 코스를 빌려 뛰다 보면 세월을 낚기 좋은 등대와 숭숭 구멍 뚫린 돌담 뒤로 펼쳐진 멋진 풍경이 나를 북돋아 준다. 동네 음식물수거기 냄새가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럼 이제 코스의 마지막으로 접어든 것이다.

어둑어둑, 가로등이 켜질 무렵, 나는 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진입한다. 가볍게 트랙을 반 바퀴 돌아, 초등학교에서 가장 높은 철봉 앞에 선다. 요새는 팔굽혀펴기, 턱걸이, 플랭크 같은 차력근력운동도 조금씩 함께한다. 집에서 하기 어려운 턱걸이만 하고 들어간다. 작년엔 한 번 하기도 힘들었던 턱걸이를, 이제는 열 번 정도는 쉬지 않고 무난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근력까지 책임져주는 러닝코스, 완벽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지옥의 오르막이다. 보폭은 좁지만 쉬지 않고 뛰어본다. 하체운동이 절로 된다. 걸으면 안 된다, 시골 모기가 들러붙어 나를 물어뜯을 수 있다. 한껏 내뱉는 날숨 속의 이산화탄소는 이미 모기를 유혹하는 향기, 열심히 팔과 다리를 움직여 모기의 착륙을 막는다.

계단을 이용해서 현관문다다르운동 코스의 완성! 팔굽혀펴기 얼른 하고 찬물에 샤워할 짜릿한 순간을 갈망하며, 오늘도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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