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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Jul 20. 2021

제주에서 친구 만들기

소셜살롱, <위드살롱>

독서 모임 같은 건데, 책을 읽지는 않는 모임이야


제주에 오기 전, 육지에 살 때는 격주마다 서울로 어떤 모임에 갔다. 주변 사람이 무슨 모임이냐고 물을 때, 모임을 어떻게 묘사할지 고심해서 내뱉은 대답이다.


'나이와 직업을 밝히지 않습니다', '진짜 나로 사는 세상'을 내세운 모임, 소셜살롱 <크리에이터 클럽>. 첫 만남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이끈 우연이었다. '열정에 기름붓기'라는 페이지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사랑이란 뭘까', '나만의 소확행', '10년 뒤에 나에게 편지쓰기' 같은 철학적인 얘기를 나눈단다. 이름만 아는 사람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상상 속의 혼란함과 호기심이 22만 5천 원의 기회비용을 짓눌러 버렸다. 제대하자마자 낯선 인연들 사이로 이끌려 들어갔다.

여행을 다니다 숙소에서 만난 하룻밤 짜리 인연에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말 못 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모순. 크리에이터 클럽의 첫 모임에서 누구는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보였다. 10명 남짓의 사람들은 고작 6번 만나면서, 3개월 뒤엔 서로의 고민, 취향, 장단점, 가치관을 술술 꿰게 된다. 이 매력에 홀려 1년 동안 4시즌을 참여했고, 그냥 참가자가 아닌 모임 진행자로도 2시즌을 보냈다.

일회성 모임까지 합치면, 1년 동안 대략 100명 정도의 사람을 만났다. 몇몇 시즌 사람과는 강원도 1박 2일 여행을 갔다 오기도 했고, 해외에서 만나기도 했다. 아직도 연락을 꾸준히 하는 사람도 있으며, 요새도 제주도로 놀러 오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회사를 빼면 어딘가 속하기 힘든 일상에서, 소셜살롱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를 대가 없이 만나기 참 좋은 기회였다.

<크리에이터 클럽>의 망원동 '거실'

제주에 아는 친구 하나 없는 나는, 좋은 기억이 가득했던 소셜살롱을 다시 찾기로 했다. 혼자서도 열심히 놀 수는 있지만, 관계에서 얻는 행복에 비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재택근무 중인 회사에서 친구를 찾긴 어려웠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방법인 소셜살롱을 선택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전개다.


서울엔 소셜살롱의 종류만 수십 개. 각각이 어디에 참여할지 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색깔을 지닌다. 어떤 곳은 정말 독서 모임이고, 어떤 곳은 자신만의 철학을 나누는 곳이며, 어떤 곳은 함께 배우는 것을 표방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사니, 그만큼 누릴 수 있는 문화도 풍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제주는, 검색해봐도 소셜살롱이 별로 없었다. 홈페이지가 따로 만들어져 있어서 현재 운영 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이었다. 그마저도 홍대에서 먼저 시작했다가 제주로 확장하여 운영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수도권은 사실상 소셜살롱이 마비였기에, 제주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위드살롱>. 위드살롱의 형태나 나누는 주제가 육지에서 했던 <크리에이터 클럽>과 상당히 유사했다. 일반인인 '호스트'(모임 주최자)가 직접 주제를 정한 모임과, 위드살롱에서 직접 주제를 정해 모임을 진행하는 '시그니처 모임'이 있었다. 나는 '인간관계'가 주제인 시그니처 모임에 참여해, 평일 오후 7시 구 제주의 한 낡은 건물로 갔다.


내가 참여한 모임 정원은 6명,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간단히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갖고, 서로를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등장인물로 불렀다. 서로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지만, 20~30대로만 이뤄진 모임이었다. 제주도민 5명과 여행자 1명이었고, 우리 모두 제주 토박이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어색한 거리감을 동시에 안고 모임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모임이 시작되니 "나와 잘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은 누군가요?", "내가 인간관계를 맺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와 같은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여행의 인연을, 누군가는 회사 동료를, 누군가는 옛 연인을 떠올렸다. 어떻게 몇십 년 인생의 잔흔적을 하룻밤에 나눌 수 있을까. 우리 모임은 3시간의 권장 시간을 훌쩍 넘겨, 11시가 넘도록 얘기가 계속됐다.

분위기가 좋다 보니, 한 번의 모임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후일을 도모했다. 우린 끝까지 나이와 직업을 밝히지 않은 채로 작별을 나눴다. 재회의 보증서일까.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모임을 1년 동안 해봤기에, 이번 모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괜찮았던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소수의 사람만 참여하므로, 참가자의 성향이나 조합에 모임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3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모임이 일찍 끝난다. 단 한 번의 만남만 보장된 모임이지만, 다음 모임이 있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확신이 들었다. 제주도의 코로나 상황이 돕는다면, 생각보다 긴 인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소의 취침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헤어졌지만, 제주에서도 친구를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확신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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