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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Oct 16. 2021

제주에서는 야근하면 안되는 이유

야근은 힘드렁~

자율 출퇴근

우리 회사는 일을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하고, 끝내고 싶을 때 끝내면 된다. 하루 8시간 일해도 되고, 12시간 해도 되고, 4시간 해도 된다. 한 달에 정해진 시간만 채우면 된다. 물론 회의 같이 협업하는 건 동료와 일정 잘 조절해야 한다.


나는 아침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을 목표로 한다. 근무 시간대가 빠른 편에 속한다. 처음 입사했을 땐 10시 정도에 출근했다가 9시로 당기고, 작년 새해를 맞아 8시로 또다시 당겼다. 덕분에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일찍 자야 해서 밤이 길지 않지만 말이다.


자율 출퇴근 제도는 너무 좋다. 어느 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금 더 잤다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정만 없으면 병원이나 은행도 자유로이 갔다 온다. 우리 회사 최고의 제도 중 하나다.

문제는 일하다 보면 5시를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가 많거나 마감이 다가왔을 땐, 연달아 야근하기 일쑤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업무를 마치려면 해가 지고 별이 보일 때까지 일할 때가 있다.


근데 그거 아는가?

야근하면 큰일 난다, 특히 제주에서는!



차 막힌다

어디든 출퇴근 시간엔 거리에 차가 우르르 몰려나온다. 아가는 등하원하고, 청소년은 등하교하고, 어른은 출퇴근한다. 코로나로 출퇴근길이 조금은 널널해졌지만, 적어도 인구의 절반은 출퇴근이 있을 테니 길이 막히지 않을 리가!

수도권은 지하철을 탄다면 막히진 않을 수 있다. 다만 사람이 꽉 차서 내 공간이 막히겠지만 말이다. 지하철이 없는 제주도는, 막히면 그냥 막혀야 한다. 모든 차가 제주시로 들어가거나 나오기 때문에, 6~7시엔 서울 뺨치게 막힌다. 저번에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방문 시각을 6시 전으로 어떻게 안 되냐고 부탁하시던 게 생각난다.

차가 막히기 시작하는 시간대

5시, 퇴근 시간을 놓쳐 야근하게 된다면 속 시원하게 7시 이후에 퇴근하는 편이 낫다. 차 안에서 버릴 시간에 일을 좀 더 하고 말지. (MBTI는 J다)

사실 나는 제주 외곽에 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은 막히지 않을 때 20분대 초반이고, 아무리 심하게 막혀봤자 30분이다. 신호 5번 정도 더 걸리는 게 다다.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참을 만하긴 하다.


맞다, 차 막히는 것이 큰일 날 정도는 아니다. ㅎㅎㅎ



아프다

최근에 왼손 새끼손가락이 저릿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오른손 손목은 살짝 뻐근하고, 어느 날은 검지로 마우스 휠을 돌리는 게 뻣뻣하다고 느꼈다. 증상이 2~3주 정도 됐을 즈음, 인터넷에 증상을 검색해보니 터널증후군 같은 것은 초기 치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통증을 방치해서 심해지면, 아예 컴퓨터를 못 잡을 수도 있다. 더는 개발로 먹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아직은 재밌는 이 일을 더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야간진료를 하는 정형외과로 부랴부랴 찾아갔다.

'주관증후군'. 인터넷으로 이미 찾아봤고 스스로 진단하며 미리 확신했던 질환이다. 다른 말로는 팔꿈치터널증후군이라고 한다. 팔꿈치 안쪽 신경이 눌려서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저릿한 증상. 원인은... 과도하게 팔을 많이 사용해서 그렇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 : 컴퓨터 하지 말고 쉬세요.
나 : 저 개발잔데요...
의사선생님 : 설거지, 빨래 같은 집안일 하지 마세요.
나 : 저 자취하는데요...

의사선생님도 알고 계실 거다. 그게 불가능하단 것은. 하지만 어쩌겠는가, 낫고 싶으면 가만히 쉬어야 한다.

병원에서 받은 파라핀 치료. 나는 호미곶이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2년, 벌써 직업병이 슬슬 오고 있었다.

최근 야근을 많이 한 게 더욱 증상을 심화시킨 것 같다. 그동안은 매일 10분씩 하루 2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트레칭을 해주면서 잘 관리했다. 허리가 좋을 것 같아서 매일 걸었고, 코어 근력 운동도 조금씩 했었는데.


이래서 야근하면 안 된다. 일이 많아도 건강보다 중요하겠나. 어차피 건강이 무너지면 일도 무너지거늘. 천천히, 멀리, 오래 해보자.

체력을 기르기 위해 동네를 뛰며 운동할 때 만난 고양이. "참 열심히도 산다. 적당히 쉬엄쉬엄하라구~"라고 말할 것 같다


노을 못 본다

온도는 여름이지만, 시기상 가을로 접어들면서 낮이 부쩍 짧아졌다. 제주도에선 아직 반팔을 입는 사람이 많지만, 추분이 지나는 바람에 어둠이 하루를 더 많이 차지하게 됐다. 노을을 보기 위해 넉넉히 오후 7시에 집을 나서던 것도 옛말이 됐다. 6시면 이미 그날 태양의 엔딩 공연 막바지니까.

나는 5시 퇴근이다. 정확히 퇴근하면 집에 5시 반에는 도착할 수 있다. 옷 갈아입고 바로 바닷가로 나가면 어느새 파란 하늘의 한 구석이 노릇노릇해진다. 오늘은 어떤 색의 조화를 보여줄지 기대하며 하루를 채운다.


하지만, 야근하게 된다면 완전히 달라진다. 빵이 하나 없어 미처 닫지 못한 샌드위치처럼, 하루가 뭔가 허전하고 이상하다. 그래도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근데 이왕이면 샌드위치의 양옆을 손으로 살짝 누르며 음미하고 싶지 않은가?

한 번은 퇴근길에 나무 사이로 비친 하늘 조각이 그렇게 예뻤다. 이토록 스페셜한 노을은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까운 공연이다. 이 노을을 바다에서 트인 하늘로 만끽했어야 했는데! 퇴근길에 차를 잠시 도로변에 대고 아쉬운 대로 셔터를 눌러 하늘을 관람한다.


일단 차 대고 찍은 하늘의 특별 공연 사진. 그래, 이거라도 건진 게 어디냐!


이게 바로 야근의 가장 큰 문제다. 정말 큰일 날 일이다. 샌드위치를 한 면만 잡고 먹으라는 야근은 참 위험하고 무자비하다. 내가 제주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제주 하늘과 제주 바다, 그 멋진 공연장에서 마음껏 뛰노는 자연을 느끼고 싶어서다.

곧 공연 시작인데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는 야근, 이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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