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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Oct 04. 2021

이게 바로 제주 바다의 본모습

쓰레기가 널린 해변, 누가 쓰레기를 버렸을까?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제주로 놀러 온 첫 친구 손님을 맞이했을 때다.

한밤중에 낭만적으로 광치기 해변을 걷고 있었다. 자글자글 파도 소리, 달빛에 어스름이 보이는 성산일출봉, 선선히 초여름을 식혀주는 바람. 그 가운데서 눈에 띄었던 게 하나 있었다. 해변 군데군데 산개해, 희미하고 하얗게 빛나는 물질이었다.

바로 쓰레기.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불투명히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쓰레기란 사실을 몰랐다면,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알이나 조개껍질처럼 바다의 장식품이라 여겼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쓰레기를 버렸을까?
그 밤의 광치기 해변. 왼쪽 아래에 페트병이 보인다. 해변의 흰색 물체는 대부분 쓰레기였다.


다음날 오전, 광치기해변 주변 경치 좋은 카페에 누워 시간을 즐길 때였다. 구름이 해를 옅게 가려주고, 푹신한 눕는 의자는 과학 같은 침대 뺨을 칠 정도였다. 숙취를 풀 겸 얕은 잠을 자는데, 눈을 떠보니 아이들이 해변에 모여 있었다. 여느 바다 풍경과 사뭇 달랐던 건, 아이들 손에 비닐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같이 온 어른이 아이들 비닐봉지를 큰 비닐봉지에 모았다. 들기 다소 무거워 보였다. 광치기 해변은 다시 모래색 단색으로 변했다. 주말을 맞아 쓰레기를 주우러 온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쓰레기를 줍는 걸까?
그 아침의 광치기 해변. 왼쪽에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아이들이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있다.

광치기해변에서 인상 깊은 2가지 광경 덕에, 나의 제주 버킷리스트에 새로운 목록을 추가했다. 해변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 쓰레기를 줍던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제주 해변 청소'를 검색했다. 페이스북 '세이브제주바다' 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았다. 세이브제주바다는 매주 비치클린(해변 청소)을 진행했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된 상태였다. 간혹 비정기적으로 비치클린을 진행하는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그때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코로나는 더 심해져 비치클린 참여 인원과 횟수는 더 줄었다. 그러다 용머리해안에서 진행하는 비정기적인 비치클린을 어찌어찌 신청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어림없지. 이번엔 태풍이 비치클린을 취소시켰다. 그렇게 여름이 다 지났다.


'세이브제주바다'와 같은 단체는 꽤 많았다. 그중 '디프다제주'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단체였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보니 멋져 보였다. 제주 버킷리스트에 새로운 목표가 추가됐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따기. 주변에 스쿠버다이빙이 재밌다고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다음에 해외에서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게 끝이었다. 하지만 디프다제주를 보고 구체적으로 꿈꾸게 됐다. 제주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디프다제주와 함께 활동해 보고 싶다.

세이브제주바다의 인스타그램 페이지
디프다제주의 인스타그램 페이지

세이브제주바다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한주영 세이브제주바다 대표의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교육 후 2주 안에 쓰레기를 줍는 인증샷을 보내면 수료증도 준다. 이번 기회를 시작으로,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을 제대로 시작하리라! 곧바로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교육비 5천 원도 냈다.


교육은 복합적인 내용을 다뤘는데, 세이브제주바다가 설립된 계기부터 바다쓰레기 실태, 플라스틱 오염과 재활용 현황, 세이브제주바다 활동 소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 방법 등이었다. 

한주영 대표도 처음엔 가볍게 주 1회 쓰레기 줍기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플라스틱은 제대로 재활용되는 비율이 낮고, 해봤자 단 한 번만 섬유 등으로 재활용되는 게 한계란다.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즉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분리수거 잘하면 되겠지'보다 '다회용 용기'를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1시간에 걸친 비대면 강연은 다양한 것을 다루다 보니 깊이는 조금 얕았지만, 대표가 직접 경험하며 느꼈던 것을 생생히 보여줘서 인상 깊었다. 짧은 강연이었지만, 봉사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되기엔 충분했다.



강연 수료증을 받기 위해 2주 안에 비치클린을 진행하려는데, 마침 디프다제주에서 이니스프리와 함께 봉그깅(해변 쓰레기 줍기는 단체마다 다양한 용어로 쓰이는데, 비치클린, 봉그깅 모두 같은 말이다)을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니스프리에서 장비도 지원해주는데, 이런 기회가 또 어딨나 싶어서 바로 지원하고 두근두근 기다렸다. 다행히 선착순에 들어 한림항으로 봉그깅을 가게 됐다. 날씨도 맑아 일사병으로 쓰러지지 않는 이상 이번엔 진짜 될 거 같다!


오후 3시, 디프다제주 스태프로 보이는 분 3명, 일반 참여자 7명이 한림항 인근 정자에 모였다. 이니스프리 기념품을 받고, 가방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은 후 봉그깅을 시작했다. 항구 주변 바위틈에 버려진 쓰레기가 목표물이었다. 얼핏 봐서는 바다 구석에 너울거리는 쓰레기 몇 개가 다인 줄 알았다.

'음... 이 정도면 한 시간에 100m 정도는 거뜬히 치울 수 있겠다.'

100m 정도는!

거뜬히...

100m...


큰 착각이었다.


나는 30분 동안 바위틈 한 곳과 씨름했고, 결국 틈 하나도 완벽하게 치우지 못했다. 비닐과 밧줄이 켜켜이 쌓여 최소 15겹은 얽혀있었다. 한 번에 쌓인 쓰레기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쓰레기가 덮이고 끼이고 엉켰다. 손을 뻗어 집어 올리면 콩나물무침을 무치다가 한 움큼 집어 올리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대형 마대 반을 채웠는데, 아직도 틈 속에 쓰레기가 그대로 있다. 페트병, 담뱃갑, 플라스틱 싱크대 거름망, 삼양라면 비닐, 고무장갑, 알 수 없는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관... 멘사 회원이 와서 창의력을 아무리 발휘해도 상상하기 힘든 쓰레기 종류가 쏟아졌다.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삼다수의 생수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페트병 대부분이 삼다수였으니까.

주머니에 들어간 이어폰 줄이 엉켜 풀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밧줄이 바위와 함께 얽혀 빠지지 않았다. 이건 바윗돌을 들어올려야 빠지는 게 확실하다. 내가 내 몸만큼 부피가 큰 바위를 들 수 있을까? 썩지도 않은 밧줄은 얼마 동안 여기 있었고, 앞으로 얼마 동안 여기 있게 될까? 바닷물에 습기가 눅눅해서 악취가 날만 하지만, 쓰레기가 썩지 못해서 그런지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굉장히 의외였다.

문제의 바위틈(왼쪽), 담배로 꽉 차있는 커피캔(가운데),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긴 유리(오른쪽)
김치통(왼쪽), 김치통 안에 죽어있는 게(오른쪽)

나만 한 마대 하나를 채우고 하나만 더 달라고 했더니, 한 시간에 할당된 양이 끝났다고 한다. 마대를 더 주면 끝이 안 난다고, 더 하고 싶으시면 잠깐 쉬었다가 다음 시간대 분들과 함께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게가 죽어 담겨있는 김치통을 마지막으로, 눅눅해진 장갑을 벗었다. 별거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힘들었다. 다시 한번 이니스프리 가방이 잘 보이도록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이니스프리 후원 감사해요~ 앞으로도 디프다제주 더 많이 후원해주세요 ㅎㅎㅎ) 마무리했다. 바위에 긁힌 팔뚝을 씻어내니 상처가 쓰라렸다. 다음엔 더워도 긴소매나 토시를 착용하고 봉그깅 해야겠다.


한림항에서 봉그깅으로 모인 쓰레기. 맨 뒤에 선명한 주황색 마대만 오늘 1시간 동안 모은 분량이다.


한 시간 더 참여할까, 하다가 조금 무리일 것 같아 그만뒀다. 처음 봉그깅은 여기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과 음료를 조금 사서 가져다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음료조차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제주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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