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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pr 03. 2024

머위꽃

                                                _남연우



그대는 머위꽃이에요

환한 대낮에는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꽃


열기구처럼 들뜬 나의 이기심이

그대를 멀리하여도

골방에 웅크려 말없이 기다려주는 꽃


돌담길 돌아간 그 언저리

자투리 땅 양지는 다 내어주고

단맛은 게워서 물리고

쓰디쓴 즙으로 고통을 다스리는


그대는

연둣빛 새 풀 엮은 초의草衣를 입고서

혼자 소슬한 강바람을 쐽니다


무지개색으로 물든 세상의 골목을 염탐하는

나는 바다로 떠내려간

해파리 말미잘 성게입니다


한여름 파도에 모래성을 쌓고 허물고

이안류에 휩쓸려 모든 길이 끝난 그곳에서

손금이 비치는 맹물처럼 흐르는

당신이 문득 떠올라요


어둑한 저물녘 짓무른 상처

약쑥을 짓찧어 붙이고 절뚝절뚝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당신의 돌담집 찾아가면


아픔을 살살 어루만져주는

그대는

슴슴한 풀색 머위꽃이에요






호숫가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다가 창가 돌담 아래 핀 머위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온통 연두색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꽃

밑반찬이 깔린 테이블을 두고 바깥으로 나가서 꽃을 들여다봅니다

자세히 보니 흰 섬모처럼 핀 꽃방에는 아주 작은 꽃 한 송이가 들어있어요

키도 작아서 웅크려야만 보이는 꽃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밍밍하게 살아가면서 꽃 피우기란 얼마나 어려운 내공을 요하는지 잘 알기에

화려한 색채로 포장하여 내세우지 않는 머위꽃이 참 대단한 꽃이란 생각이 듭니다

늘 그 자리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는 엄마꽃, 아버지꽃이 머위꽃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의 쓰디쓴 맛 간직하면서 단물은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는...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시선을 빼앗는 예쁜 꽃들이 많이 핍니다

그래서 더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머위꽃!!!

지치고 힘이 들면 화려한 꽃보다는 머위꽃처럼 수수한 기다림이 있는 곳으로 가서 위안을 받고 싶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향기가 진한 흑매(?) 주변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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