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도시, 비엔나에서

by 남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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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선풍기 날개처럼 생긴 풍력 발전소가 구릉 위에 서서 빙빙 도는 바람 많은 나라 오스트리아로 다시 간다. 발음하면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피식 나오는 ‘비엔나’는 모차르트와 클림트의 도시, 바로크풍 합스부르크 왕가의 도시이다.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노란 유채꽃이 가을 들판을 물들이는 길을 달리면서 브라티슬라바로 향하는 이정표를 본다. 지난밤과 가슴 쓸어내린 아침의 모든 피로를 극복하고 흐린 하늘 아래서도 기분이 점점 날아오르는 까닭은 바로 오늘 비엔나에서 동생을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살았던 그린찌마을 햇와인과 호이리게를 먹기로 예약한 식당 주소를 동생과 카톡으로 공유하였고 이제 몇 시간 뒤 보고 싶은 동생을 만나게 된다. 동생이 가끔 간다던 국경 근처 대형 아웃렛 매장과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 ‘쉔부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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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옐로’로 채색되어 1441개의 방을 거느린 웅장한 건물도 사진으로 이미 봐서 그런지 친숙하기만 하다. 드넓은 정원과 전경도 흙의 맨살을 드러내놓고 있어서 위압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다.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색감 노란색 건물이 다정하게 손 내밀며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는 기색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궁전 내부로 들어가서 관람이 허용된 통로를 따라 이곳이 유럽을 600년 넘도록 장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임을 증명해주는 공간임을 깨닫는다. 비엔나 궁정 음악회에 초대되어 온 여섯 살 모차르트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운명처럼 만난 곳.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서로 닿을 수 없는 각자의 인연을 불행하게 마감하였다.


여자에게 사치는 최후까지 경계해야 할 죄목이라고 생각한다. 미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생리적 기질 탓에 더욱더 그러하다. 검소한 옷을 입어도 보석은 빛난다. 화려한 옷을 입어도 보석은 빛나지만 더 크고 빛나는 보석을 요구하는 사치의 늪은 빠지면 빠질수록 위험하다. 거울방이 비춰주는 눈부신 외모에 가려져 궁핍해지는 내면을 어떻게 감출 것인지, 화려한 불이 불을 댕기는 형국이다. 불 꺼진 파국에 싸늘히 식은 잿더미는 감추고 싶은 슬픈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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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대국의 왕조는 문을 닫았고 그들의 소장품은 주인을 잃은 채 말이 없다. 예술의 극치는 종교를 칭송하고, 사치의 극치는 궁전에 머물렀다. 궁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누려온 사치는 당연지사, 계몽주의 사상과 함께 급변하는 혁명기 프랑스는 그녀의 사치를 큰 죄악으로 문제 삼았다. 시대의 희생양 마리 앙투아네트가 모차르트의 연인이었다면 그 두 사람은 행복하였을까. 천재 모차르트는 평범한 여자를 싫어하였을 것이다. 그의 연인 콘스탄체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자라고 하니까. 비엔나 최대 번화가 케른트너 거리 슈테판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엄숙하게 치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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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국립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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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2926.JPG -슈테판 대성당-


이 거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 기념품 가게에 들른다.

관능미가 지배하는 그의 대표작 <키스>를 원화 그대로 보지는 못하였지만 뛰어난 복제화로 재탄생되어 엽서부터 액자까지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어 있다. 혼자서만 키워온 사랑이 가눌 데 없이 외로워 좋아하는 바닷가 기슭으로 쓸쓸한 걸음을 옮기곤 했던 날들. 첫눈에 외면받은 사랑을 지켜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품 <키스>는 자신만의 고독한 성에 갇힌 한 남자가,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랑을 쟁취하는 순간의 희열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은유이다.


천 길 낭떠러지 어둠 깊은 공간으로부터 빛의 세계로 활짝 열린 문턱을 넘어서는 인도됨이요, 가로막힌 둑이 허물어지면서 고요하고 평화로운 강물이 반짝이며 흘러감이다. 남자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감추느라 망토를 두른 채 여자의 뺨으로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발아래 꽃들에게 피워놓은 연인은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서로를 구원한다. 허리를 굽힌 남자의 구애를 무릎을 구부린 채 받아들이는 잠자는 듯 평온한 그림 속 여자, 클림트의 애인 에밀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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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시즘(Eroticism)의 대가 그의 곁에는 언제나 여인들이 배회한다. 화사한 색채와 금빛 마술로 치장한 여인들이 싫증 나면 누드를 그리다가 그의 관심은 온전히 자연으로 옮아간다. 숲으로 둘러싸인 집과 나무도 멋있지만 발치에 피어난 색색의 야생화들과 더불어 수북한 이파리 옷을 겹겹이 겹쳐 입고 몸을 감춘 해바라기는 황금빛 테두리를 두른 노란 꽃잎 얼굴로 당당히 서서 여성성을 발휘한다.


한 송이 꽃에서 여자의 얼굴을 보는 건 왜 그럴까. 자신의 절대군주를 향해 사랑을 피워 올리는 일편단심 해바라기는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인 꽃이다. 높은 키만큼 적극성을 띠는 쟁취력 또한 예술가들의 열정과 비슷하여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아한 몸짓과 고독과 금빛 관능미가 숨 막히도록 타오르는 햇빛으로 물들어 시간의 영원성을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의 예술은 퇴색되는 법 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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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예약된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한다. 버스가 멈추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 얼굴이 보인다. 멀고 먼 타국에서 마주치는 동생 모습이 어찌나 반가운지 세 살배기 아기부터 끌어안는다. 반가움도 잠시 단체 손님을 주로 받는 이 식당은 개인 손님을 일체 받지 않는다고 한다. 빈 테이블과 의자가 있음에도 깐깐하게 구는 현지 규정이 대체 뭔지 전혀 융통성이 없다. 우리 일행으로 증원시켜 계산을 치르면 될 터인데 결국 동생 가족과 식사를 못 하게 됐다. 언니에게 누가 될까 다급히 식당을 떠난 동생은 이따가 다시 호텔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영 아쉬운 대목이다.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악사가 다가와서 우리 가요를 연주해주니 기분이 풀린다. 두 시간 뒤 비엔나 외곽 호텔에서 동생과 상봉한다. 하룻밤, 이 호텔에서 함께 지내게 된 동생과 제부, 조카들과 한 방에 모여 풍성한 한식을 다시 차린다. 동생이 싸온 김밥과 전복죽, 시금치 된장국을 꿀맛보다 맛나게 먹으면서 맥주와 토카이 와인을 곁들여 이국에서의 밤을 신명 나게 보낸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아이들은 눈이 말똥말똥, 아기는 침대에서 신나게 뛰고 감기 걸린 여섯 살 조카아이는 기침을 하다가 토하고 그 와중에 음식을 먹고 얘기하고 웃고… 동유럽의 모든 매력과도 맞바꾸고 싶은 혈육의 정을 새삼 확인 또 체감한다. 야속한 아침 해가 밝아오고 동생과 작별할 때가 되었다. 긴 얘기를 풀어놓기에는 너무나 짧은 밤이었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우리 일행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내 동생, 환하게 웃는 얼굴이 국적 불문하고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동생은 외국에 있으면서도 부모님 안부를 매일 챙기는 살뜰한 우리 집 막내딸이다. 동생에게 주려고 추석 때 부모님이 챙겨주신 송이버섯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여행 9일이 지나도록 끌고 다녔으니 온전할 리 없는데도 반가워하던 동생은 가족들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 왔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비경쟁적인 교육 환경을 갖춘 이곳 풍토에서 행복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동생 가족 모습을 보게 되어 언니는 안심하고 떠난단다. 동생이 야들야들 갓 구워준 쥐포를 일행들에게 나눠주며 헤어져도 슬프지 않으므로 웃으면서 떠난다. 안녕!


DSC02925.JPG -케른트너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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